2020년 12월, 올해에도 어김없이 수능 만점자가 나왔다. 6명이나. 작년보다 반이 줄어든 숫자라는데, 수능이 어려웠던 걸까 아니면 코로나로 예년처럼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하지만 학부모의 눈길을 끄는 건 몇 명이냐가 아니었다.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5명, 일반고에서는 단 1명뿐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이 수치를 보고는 작게나마 한숨을 쉴 것 같다. ‘역시 자사고와 특목고가 답인가?’
서울지역 자사고에 다니는 어느 만점자는 하루 1시간은 꼭 독서를 했단다. 언제? 아침 수업시간 전에 1시간 일찍 가서. 돌이켜보면 나도 학교 가기 전에 눈곱 떼기 바빴던 것 같은데 아침 일찍, 그것도 30분도 아닌 1시간 전에 학교에 도착해 책을 폈다니... 모범생은 역시 다르구나, 생각했다. 사교육과 완전히 담을 쌓진 않았지만 (왜 신문에서 이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다. 받았으면 받았고 아니면 아닌 거지) 혼자 공부하는 게 효율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전국의 학부모들에게 위안 아닌 위안을 들려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학생의 만점 비결은 독서나 사교육, 혼자 공부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늘 시간을 잘 관리해서 독일 철학자 ‘칸트’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매일 3:30분에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그 칸트 말이다. 결국, 학생의 성실함이 이번에 빛을 발한 셈이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좋은 꿈이다.
같은 날짜의 신문에 AI 의사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그 내용도 자못 흥미로웠다. 검사 4~6시간 이후에야 알 수 있었던 치매 판독 결과가 단 1분이면 끝나고 대장내시경의 AI 판독 정확률은 이미 인간을 10% 이상 넘어섰다고 했다. 원인을 찾기 어려워 여러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야 했던 소아희귀병 환자의 병명 진단도 단 15분이면 나온다고. 진단과 수술 분야에서 AI 의사가 활성화된다면 참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편리하고 좋은 세상일 것 같기는 한데, 인간적인 대화와 때로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깨달음의 순간이 사라질 테니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는데 왜 자꾸 감기에 걸리는 거죠?”
10년 전, 내 불평을 듣고 있던 연세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내게 가만가만 대답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집 앞에 새로운 수학 학원이 ‘또’ 생겼다. 지금도 너무 많아 보이는데, 집 앞 기다란 십자사거리는 일반 상점인 1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원이다. 영어, 수학, 국어, 과학, 한국사, 그리고 예체능까지 그 많은 공간들에 꽉꽉 들어차 있다. 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학원이 많아?”
나는 작게 한숨 쉬며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몰라. 중요한 건, (학원이) 없어지진 않을 거야. 너무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되어 버렸거든.”
아이가 잠깐 수학 학원에 다녔을 때의 일이다. 숙제를 풀다가 금방 방에서 나오기에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냈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답이 가관이었다.
“선생님이 모르는 문제는 풀지 말고 갖고 오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풀어주신대.”
자신이 풀지 않으면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게 수학 문제인데, 푸는 ‘노력’을 하지 말라고? 그 학원에 똑같은 과정을 다시 듣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가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만점을 향한 욕망들이 서로 들러붙어 함께 굴러가는 그 환상적인 케미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한쪽은 의지하고 한쪽은 의지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은 더욱 끈끈하고 단단하게 뭉쳐진다. 언론에 도배가 되어 있는 ‘4차 산업 혁명’ 어쩌구는 그저 귓등으로 흘려들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서, 누가 멈추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스노우볼이 되었다. 시스템은 어쩔 수 없으니 개개인이 바뀌는 건 어떠냐고 누군가 속삭이지만, 주변의 소음에 묻혀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수능 만점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많이 고생하고 노력했을 테니 박수를 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더이상 이렇게 신문의 큰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건 완벽함과 학력주의를 부채질하는 행위이고 개개인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만점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지만 거의 불가능하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비추어서는 차라리 부질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