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다음 날을 위해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워야 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거나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해 얼른 잠들어야 하는 시간이죠. 그럴 때면 항상 작년 생각이 납니다. 취업준비를 위해 밤늦게까지 자소서를 쓰고 면접 연습을 하고 공부를 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때는 분명 이 순간을 간절히 바라고 원했음에도 그 간절함은 이제 없어지고 그저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만 남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작년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 테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겠죠.
그러나 이런 류의 생각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금의 성격이 형성되기 이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에 저는 무려 '개그맨'을 꿈꿨습니다. 현재는 완전 내성적인 성격에 말도 그리 잘하지 못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잘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도 그렇고 제 주변 사람들도 믿지를 않더군요.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저의 어릴 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 때문이었는데요. 그는 교실에서 이른바 '광대' 역할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가뜩이나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던 어린 시절이었는데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갈까 봐 혹은 이젠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저도 그 친구를 따라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같이 깔깔대며 놀곤 했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레 그 친구를 따라 주변 어른들에게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이후에 중학생이 되고 조금씩 지금의 성격이 형성되면서 그 과거 시절이 참으로 부끄럽더군요. 왜 그런 성격에 맞지도 않은 행동을 했는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도 그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꽤나 피곤한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부끄러움만을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개그맨'은 제가 처음으로 가졌던 꿈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했던 목표와는 정반대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뿐 아니라 약간의 자괴감도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나는 이런 걸 꿈꿀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니 자괴감이 생긴 것이죠.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1학년을 끝낸 날엔 고등학교 시절 꿈꿨던 성인의 모습과 비교하며 같은 마음이 들었고 20대 중반에는 21~2살에 꿈꿨던 모습과 비교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야근을 하고 침대에 누운 2024년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또다시 찾아온 자괴감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죠. 하지만 분명 이것이 반복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저는 또다시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여러 꿈들을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 지도 모르겠어요.
희망하기-좌절하기-스스로를 미워하기를 또다시 반복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시간이 흘러 적어도 그 반복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그 사실 자체를 압니다. 이전에는 그런 사이클에 무지하여 지금의 꿈이 늘 나의 꿈이 될 줄 알았고 언젠간 이루게 될 무엇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꿈이 계속 나의 꿈이 될 것이라는 확신보다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한 좌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시작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바뀌고 실패하고 다시 꿈꾸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과거의 꿈이 변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그저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희망하기-좌절하기-스스로를 미워하기의 사이클에서 적어도 스스로를 미워하는 시간은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