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하기
영화 한 편 보러 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은 타인을 지켜 주기 위한 이별을 선택하는 배려,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헤어지는 용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일란성쌍둥이이며 사랑하는 타인과 나를 구분 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 있음을 표현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시그니처 포스터]
일과 타인에 대한 친절 배려의 의무로 전투 같은 한 주를 보낸 지친 심신으로 맞은 주말 아침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 급감과 저소득층 붕괴의 위기 앞에 생존 경영의 몸부림으로 한 주를 보내고 방전된 체력과 평상심을 회복할 하프타임(Half Time)의 주말입니다.
저의 회복을 위한 주말 루틴(Routine)은 일만보 산책, 밀린 신문과 SNS 읽기, 독서 한 권 그리고 남는 시간은 상상력의 보충을 위하여 영화관과 전시 공연장을 찾아 나섭니다. 이번 주말은 '영화 한 편 보러 갈까?'가 당첨되었답니다.
한여름 장마철 저녁 검은 구름을 뚫고 나타난 황금빛 눈부신 석양 하늘은 산책길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저에게 세로토닌의 설렘을 제공합니다. 극장 가는 길, 오늘 스크린에서 만날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이 누구일지 헤아리다 문득 영화를 보러 가던 수십 년 전 사춘기의 나를 기억의 보석상자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의 주말입니다.
7080 학창 시절, 똑같은 빡빡머리에 똑같은 교복과 가방을 메고 다니며 기말고사를 치르면 의례로 찾아가던 극장은 지겹도록 ‘모두 똑같이 학창 시절’의 세상에서 벗어나 영화 속 또 ‘다른 나의 세상’을 찾아 여행하는 해방구와 같은 것이었지요.
이소룡의 ‘용쟁호투’를 본 다음날 바로 그의 후예가 되려고 쿵후 도장에 찾아갔지만 ‘키 좀 더 커서 오라’는 사범의 말에 고개 푹 떨구고 털레털레 도장을 걸어 나오던 기억이 납니다.
최인호 원작에 하길종 감독의 19금 영화 ‘별들의 고향’을 기어코 보려고 단짝 친구의 대머리 아버지가 쓰는 가발을 몰래 쓰고 입장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감동에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서점들을 뒤져서, 참고서 살 돈으로 최인호 작가의 소설책을 사서 책가방에 숨겨 두고 몰래 읽곤 했지요.
한동안 저의 이상은 여주인공 ‘경아’처럼 슬픈 운명의 여성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소설가 신사가 되는 것이었죠. 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신춘문예로 등단하겠다는 어설픈 말에 ‘쯧쯧···. 네 할아비처럼 가난하게 살 작정을 했구나!’라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나의 등짝을 억센 사랑으로 세게 후려치신, 돌아가신 할머님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합니다.
코폴라 감독과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대부’는 70년대 십 대 소년인 필자로 하여금 피 끓는 마초(Macho) 유전자를 가진 남성임을 자각하게 했고, 알랭 들롱의 출세작 ‘태양은 가득히’에서 태양을 등지고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지중해의 파도에 빛나는 요트 운전대를 잡은 주인공 알랭 들롱의 장면은, 저에게 언젠가는 지중해의 태양을 가득히 받으며 하얀 파도를 가르며 멋진 요트를 달릴 것이라는 결심과 꿈을 심어 주었지요.
십 대의 아침마다 매일 보았던 청사포 시퍼런 바다를 지겨워하던 소년은 스크린 속 영어 대사와 영화음악(OST: Original Sound Track)에 매료되어, 언젠가는 시드니와 나폴리 그리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3대 미항을 스스로 찾아가리라 일기장의 버켓 리스트(Bucket List)에 적어 두곤 했지요.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가 소설에서처럼 청새치를 낚으며 위스키를 마시고 집필하던 쿠바의 앞바다를 찾아갈 남미행 여행길에 리우데자네이루 항구도 찾아가 보려 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저에게 현실 생활과 미래 상상의 세계를 이어준 꿈의 오작교였지요. 수십 년이 지났어도 시네마 천국 영화관에서의 꿈은 제 심장 속 열정으로 사운드로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지요.
지난 주말엔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작 ‘헤어질 결심’을 감상했어요.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누구나 모르던 타인과 만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 헤어지기도 하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꼿꼿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타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인연을 지켜 주기 위하여 마침내 헤어지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사랑과 서로의 배려를 청록색의 색감으로 보여 주었지요.
작곡가 구스타프 말로(1860~1911)의 5번 교향곡 4악장의 수려한 사운드를 들으며 소유욕과 탐욕으로 원하던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 내려는 결심과 몸부림을 보여주는 두 남녀 주연배우들의 심리를 청록색의 의상과 소품으로 보여준 이 영화는 관객에게 ‘과연 당신은 어떤 만남과 헤어짐을 할 것인가?’라는 울림과 질문을 던졌지요.
‘헤어질 결심’은 타인을 지켜 주기 위한 이별을 선택하는 배려,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헤어지는 용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일란성쌍둥이이며 사랑하는 타인과 나를 구분 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 있음도 표현했지요.
영화에서 소개된 주제곡 OST(Original Sound Track)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1860~1911)는 교향곡 5번 4악장을 완성하고 나서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사후 111년이 지난 올해 ‘말러 교향곡’은 박찬욱 감독과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었고 그의 음악이 다시 태어나 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 주었지요.
필자는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의 교향곡을 수십 번 더 즐겨 들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운 곡임을 증명한 그의 음악적 태도와 작곡하는 습관은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것들과 만나 몰입하고 진정한 몰입을 방해하는 어떤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직관을 제공합니다.
‘태도가 미래를 바꾼다’는 글로벌 기업의 캠페인 메시지를 읽으면서, 태도는 행동을 결정하며 같은 행동의 반복은 습관과 패턴을 고착화하여 한 인간과 그 사회의 미래 정체성을 결정하게 됨을 직관합니다.
미래를 그리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할 것인가의 원칙을 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불확실성의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 그 중심을 잡고 함께 가고자 하는 미래의 방향과 삶의 목적성을 분명하게 공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곡 '안개'는 내게 '안개속에 눈을 떠라, 끝까지 나를 사랑하라, 타인을
존중하라~'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안개 가수 정훈희와 포크의 전설 송창식 듀오로 다시 태어난 명곡..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곡조 후렴부가 엔딩 스크린(Ending Screen)을 안개꽃처럼 장식하며 나지막이 제 가슴에 속삭였지요.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아~~~~~ 아~~···
안개속에 눈을 떠라 끝까지 나를 사랑하라 타인을 존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