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하얀 고독, 찬란한 고독

청춘의 영원한 테마, 고독과 성장에 건배

by 낭만밖엔 몰라


그대의 가을, 고독한가요?



#아~ 가을 새벽 지긋한 고독이 또 찾아왔다!

초가을의 밤은 점점 짙어 갑니다.

'Cricket Cricket~' 귀뚜라미 소리와 '재깍재깍~' 커 가는 시계 초침 소리가 불 끄고 드러누운 방안을 점령군처럼 자정의 성벽을 넘어와 새벽을 향해 쳐들어오는 불면의 밤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제 글을 읽어 주실래요? 텅 빈 실존의 허기짐에 쩔쩔매는 새하얀 불면의 밤이 그대를 찾아온다면 이 글을 한 번 읽어 주실래요?


각자의 처지 혹은 자신만의 상황에 따라 속내와 결은 각기 다르지만, 고독감은 미묘한 감정의 악기들 중 절대지존의 자리를 차지하며 지독히, 죽을 때까지 #검은 고독으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지요. 휴식으로 충만해야 할 연휴의 밤 거꾸로 밀려오는 가을날 빈집 같은 고독감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시는지요? 고독의 감정도 반려동물처럼 길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뭉크 - '절규')


#불면의 밤 - 哀而不悲 (애이불비) 노래를 듣다

불면이 찾아오면 수면제 대신 포르투갈의 애절한 민요 음악 '파두(Fado)'를 세계에 알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1920~1999, Portugal의 민요 국민가수)의 '검은 돛배'란 제목의 노래를 간간이 듣곤 합니다. 생계를 위하여 바다로 간 연인의 죽음을 알린 검은 돛배를 바라보며 비탄에 잠긴 아내의 심정으로 가수는 절규합니다.


'당신은 떠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나와 함께하고 있다.'

절망을 품은 보자기 같은 검은 바다와 그 속의 검은 돛배, 그리고 검은 고독을 한(恨) 서린 사랑의 감정으로 哀而不悲(애이불비) 하얀 고독의 노래로 승화시킵니다. 빈 속에 위스키 원~샷(One Shot) 들이킨 것처럼 이 한 곡의 애절한 노래가 고독하고 불면한 숲으로 쑤욱 끌어당깁니다.


가을 밤바다를 헤맨 여신의 목소리는 스패니시 기타 리듬과 어우러지기까지 오랜 시간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사별과 비탄과 고독의 숨소리로 발효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 노래를 수십 번, 수백 번 듣다 보면 걷잡을 수 없던 검은 슬픔의 눈물이 말라붙어 다시 일어서도록, 그리고 새벽의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하얀 영혼의 울림을 주니까요.


#나만의 고독한 1만 시간을 찾아서

많이 인용된 '1만 시간의 법칙'이 허무와 고독의 시간에도 적용되어 발효할 수 있음을 깨닫는 초가을 중순입니다. 나 홀로 이겨낼 수 없는 힘겨운 환경과 버틸 수 없는 기억이 거대한 벽으로 서 있지만, 하루 3시간 나만의 고독에 몰입하면 일주일 약 20시간이 되고, 합하여 10년간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1만 시간 후 소기의 경지에 오르는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사회과학 논문으로 입증하긴 어렵다 해도 중장년의 암묵지(暗默知; 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지식)는 늘 작동하고 있답니다.


#나의 하얀 고독 - 도전자의 고독

저에겐 2018년 동계 올림픽의 장면 하나, 여전히 저의 기억에 가장 깊이 각인되어 있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의 이야기지요. 썰매 스켈레톤 스피드 종목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선물한 윤성빈 선수는 10년 전 나 홀로 이 종목을 선택하고 훈련을 시작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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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16일 동안 열리는 화려하고 찬란한 신전의 제전 올림픽 기간 동안 저에겐 나름 특별한 습관이 있답니다. 4년, 아니 그 이상의 긴 시간을 고독한 땀으로 훈련한 참가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을 모습을 통해 거꾸로 나를 바라보고 점검해 봅니다. 참가 선수들의 격한 몸부림과 드라마 같은 경기를 보며 나의 지난 4년은 어떠했는지, 나는 무엇을 목표하여 어떤 몰입을 했는지 자문하며 묵상하는 나의 올림픽 돌아봄 시간이지요.


경기에서 이긴 선수보다 패배의 눈물을 뿌리는 선수들을 보며 내 인생의 좌절을 아파했고, 다음 4년 후 모습은 어떠할지 상상하고 계획을 그려보는 시간이지요. 올림픽은 나의 내면과 외면을 차분히 짚어 내는 묵상의 기간이며, 이런 미래지향적 고독을 '하얀 고독'이라 불러 봅니다.


저에겐 2018년 동계 올림픽의 장면 하나, 여전히 저의 기억에 가장 깊이 각인되어 있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의 이야기지요. 썰매 스켈레톤 스피드 종목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선물한 윤성빈 선수는 10년 전 나 홀로 이 종목을 선택하고 훈련을 시작했다지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남의 나라의 것이라고 포기 종목의 벽을 넘어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흔들리며 포기하고 싶었을까요?


넘볼 수 없는 유럽 출신 챔피언들이 이미 버티고 있는데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지 않았을까요? 정상까지 질주를 마치고 승리의 시상대에 올라 감동의 눈물을 뿌릴 때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1만 시간의 훈련이 얼마나 고되고 고독했을까요? '검은 고독'을 '하얀 고독'으로 바꾼 힘은 무엇일까요?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꾸로 꿈을 꾼 것 아닐까요? 하얀 고독은 꿈의 사다리 아닐까요?


# 나의 숙명 - 희망 찾기

다른 경쟁 주자들은 스켈레톤 경기장에서 하루 10회의 연습을 했는데, 윤성빈 선수팀은 하루 380회의 코스 주행 연습을 했습니다. 무려 38배 더 미쳤고, 더 미친 만큼 지쳐 멍들도록 도전의 시간을 보낸 거죠. 그는 스켈레톤 코스를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할 때까지 연습했다’고 말했습니다.


10년이 아닌, 5년의 시간 동안 1만 시간을 채우고 몰입하되 올림픽 참가에 만족하라는 주변의 기대를 넘어, 불가능하다는 금메달을 목표로 두었지요. 선두 경쟁자와 나의 강약점을 미분해 분석하고,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이 몸에 완전히 체화될 때까지 때로는 먹은 음식을 토해도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견뎌냈습니다. 불안과 절대 고독의 젊음을 그는 도전의 시간으로 축적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강점이 특별히 중요하지만 주제에 맞게 글을 쓰기 위해 이 부분은 생략합니다.)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의 불안한 두려움과 고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얼마나 멀리 보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하얀 고독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목표가 있는 고독을 #하얀 고독이라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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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의 위업을 달성한 이태리의 산악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등정을 축하한 사람들의 찬사를 뒤로하고 바로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로 홀로 돌아가 낭가 파르트 단독 등반을 감행했지요. /언스플래쉬


누구나 마음속엔 깊고 넓은 세상의 바다를 떠다니는 고독하고 검은 삶의 돛배 한 척 있지요. 그러니 우리 각자 꿈을 찾고자 한다면, 꿈이 있다면, 검은 바다 위 하얀 고독의 돛대를 활짝 펴서 주변을 돌아보며 1만 시간을 항해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죠. 그것이 바로 희망 아닐까요.


희망을 포기한다면 남는 것은 절망과 망각 말고 뭐가 있을까요? 내게 주어진 제한된 조건에서 자존감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너머 북극성에서 한시라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되겠지요.


돌아봄과 난상토론 그리고 일사불란 조직과 사회의 하얀 돛배 엔진을 정비하며 더 많은 하얀 돛배를 건조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파두(Fado, 숙명; 포르투갈어)가 아닐까요?


#나의 희망 찾기는 찬란한 특권이다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의 위업을 달성한 이태리의 산악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등정을 축하한 사람들의 찬사를 뒤로하고 바로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로 홀로 돌아가 낭가 파르트 단독 등반을 감행했지요. 탈진과 산소 부족으로 불안과 두려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절대 고독의 기나긴 시간을 불굴의 투지와 1만 시간의 연습으로 획득한 등반 전문성을 통해 검은 고독을 자신의 빛나는 존재감으로 인식하는 하얀 고독의 세상을 변화시키게 되지요.


하나뿐인 내 인생의 주인공 나는 폭풍 몰아치는 인생의 검은 바다를 언제나 건너갈 신의 능력은 없지만, 인생 올림픽과 10년 후 달라진 나를 위해 매일매일 차근차근 1만 시간을 즐기며 찬란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 아닐까요?


성장하는 나를 위해 어떻게 1만 시간을 쓸지 모색하는 우리는 고독 찬란한 특권을 가진 파이터 아닐까요?



아아~ 청춘의 하얀 고독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