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영접한 새해 일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고 씻어낸 욕심
새해 새달 초하루에 북아프리카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집트 남쪽 끝 아스완에서 아부심벨 신전으로 향하는 새벽 사막 고속도로에서 새해의 일출을 영접합니다. 새해 첫 일출 선물을 받기 위해 깜깜하게 무서운 사막 만리길을 찾아왔지요. 후덜덜 ~ 하루의 가장 낮은 기온에 입술을 떨며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태양이 붉은 머리를 들이밀 때의 촬영의 순간 카메라 셔터 ‘찰칵’ 소리가 전신의 감각을 깨웁니다. 아이고~ 행복해~ 탄성을 지르며 다시 한 해를 시작합니다.
고구려로 치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합친 것만큼 국경 남쪽의 영토를 확장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던 파라오 람세스 2세. 5,000년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숭앙을 받는 그의 흔적을 만나러 아부심벨 신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집트 문명이 시작된 나일강에서 새 날 새 태양의 기운을 담은 부적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은하계의 푸르고 창백한 섬 지구행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눈물이 나곤 합니다. 과학의 시대에 신비로운 것은 우주의 풍경 말고는 없을 테니까요.
AI(인공지능) 만능의 시대에 진입했지만, 찬란한 과학적 미래를 꿈꾸는 일은 점점 재미가 적어집니다. 예술에 추억의 별 하나 별 둘 얹은 역사의 커피잔에 에스프레소 진하게 얹은 아포가토처럼 달고 쓴 상상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의 상상력은 뇌에 도파민 선물해 줄 테니까요. 영원한 건 우주와 신 말고는 없을 테니까요. 이젠.. 일출의 순간. 의식의 흐름은 병약한 손주를 엎고 십리길을 업고 매일 병원으로 데려다주신 내 아름다운 외할머니 얼굴이 클로즈업 나타납니다. 람세스 2세가 묻힌 파라오의 신전 앞에서 외할머님을 그리워했습니다. 새벽 사막에 눈물꽃 하나 뿌리며.
역사공부를 통해 익히 들은 피라미드, 파라오, 미라, 스핑크스, 오벨리스크.. 이집트를 단 2주 만에 다 훑어볼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5,000년의 시간 속으로 잠시 쑤욱 들어가 우리들의 오늘을 돌아보고 싶었지요. 이집트 왕조는 '파라오'로 불리는 왕이 무력을 바탕으로 사후의 신으로 부활한다는 강력한 시나리오를 가졌습니다. 파라오가 영원불멸하여 후세를 다스린다는 신화를 파피루스에 기록하며 왕조를 지속한 시나리오는 기가 막히게 완성도가 높습니다. 인간과 신을 하나로 묶어 거대하교 정교한 권력시스템을 유지한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
지금 과학의 시대에 무지몽매하고 웃기는 허구 같지만, 내세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섯 개의 천년왕조를 이어간 이유와 리더십을 현장에서 찾고 싶었지요. 이집트 왕조들은 백성이 배고프면 나라가 없다는 인식을 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5천 년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요. 나일강의 풍요한 젖줄을 따라 성실한 백성들은 농사를 짓고, 왕조는 불멸의 신전과 피라미드를 확장하여 파피루스와 금덩어리 그리고 사후의 내세를 독점했습니다. 반대급부로, 충성의 세금과 노역을 바친 백성들이 힘써 농사 지어먹고 살도록, 수급조절로 대대손손 태평성대를 누리는 제도적 장치를 했겠지요. 만일 왕조가 백성들의 생계마저 뺏아 갔다면 했다면 이집트에서 우리나라의 동학사상 같은 민본주의가 당연히 생겼거나 전복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 들었지요.
거두절미하고, “도대체 오천 년씩이나 국가를 유지한 리더십이 무엇일까?." 질문이 생겼다. 이 질문 때문에 이집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1,000년의 왕조를 유지한 사례도 거의 없는 역사 이래 지구상에서 5천 년의 왕조역사를 가진 나라 이집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유적 해설자가 전해준 파라오와 미라 이야기는 내게 한 줄의 시어보다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룩소 사막에 비춘 빛과 어둠에 숨은 숭고의 감정을 자아냈을 뿐입니다. 파라오 왕들이 나랑은 아무런 상관없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무용의 허무를 깨닫는 것도 먼 여정의 맛이긴 하지요.
룩소 (Luxor)에서 태양을 바라보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었습니다.
룩소에 묻힌 열 명의 파라오는 이 시 한 줄에 필요한 배경이 되어 주었을 뿐입니다.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
(이해인- 삶과 시)
파라오의 무덤을 등지고 저 스핑크스가 소유했던 오벨리스크의 햇빛에 축축한 욕심들과 슬픔을 이집트 사막 미라처럼 탈탈 털어 말리거 싶어 집니다. 이왕이면 친구들의 아픔도 함께 빨랫줄에 널어 주고 싶습니다.
신전에 낙서 대신 마음에 새긴 말입니다. ”군더기 말과 욕심을 버릴 줄 알게 해 주소서. 말보다 몸으로, 글로 그리고 그림으로 남은 생의 시간을 사용하도록 태양신이시여 만물의 신이시여 저에게 열정의 힘을 주소서! "
여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이집트 수도 카이로 주변의 길과 하천 위에는 피라미드를 쌓아도 될 만큼 쓰레기 천국입니다. 우유팩과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유유히 던지고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봅니다. 신호등 없이 잦은 교통사고가 나도 싸우는 표정 없이 그저 밝아 보이기만 합니다. 오천 년의 그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일까요?
비행기가 이집트 상공을 떠나면서 이것저것 상념이 떠오릅니다. 역사상 가장 빨리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높은 자살률과 인구감소에 시달린다면.. 겨우 80년도 안 된 Republic of Korea 가 다가올 5,000년을 어찌 이어갈 것인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공익보다 내 새끼 내 가족 먼저 챙기는 게 권력의 일상이 된 이 땅의 민주주의가 과연 이집트 독재왕조보다 오래갈 것인가? 새로운 질문도 생겼습니다. 약속된 공익을 훼손하고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탐하는 행동을 취하는 인간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으로 남은 볼펜 다발과 잔돈 달러를 이집트인 가이드에게 다 주고 귀국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집 베란다에서 커피 한 잔 걸치며 나의 인생여정을 복기합니다. 이해 관계자들의 생계를 책임진 CEO 경영자의 배에서 내려 종일토록 시와 소설을 읽고 싶은 시간으로 갈아타고 싶은 열망으로 이집트 사막을 걸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집트 사막을 열망했고, 이집트 사막에 와서는 집으로 얼른 돌아가 시집 한 권 끼고 오후 한가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고 싶단 생각을 한다. 여행을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와 시를 읽고 커피를 마시자던 꿈은 달성했지요. 아.. 그리고 미라의 신전에서 내 할머님이 그리워 남몰래 슬쩍 울었습니다. 오천 년의 이집트에서 나는 별 볼 일 없는 지구 여행자임을 깨달았습니다. 여행 후 달라진 게 있다면 남의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인간으로 봉사하며 위정자처럼 남의 것을 탐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오천 년에 비하면 주어진 삶의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