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오랜만에 그런 날이었다.
일본 유학을 하지 않아 봤지만, 해보고 싶고, 일본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유학생의 하루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
괜찮은 촬영 감독이 있었다면 조회수 괜찮을 브이로그의 생일날이었을 수도 있다.
시험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정확하게는 아직 3개 정도의 시험이 남아있긴 하지만,
오픈북 테스트에, 하나는 일본어 시험 (영어 전형 기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어렵지 않음)
뭐 이것들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막 밤늦게까지 시간을 만들어내고, 운동도 안 가고 공부해야 하는 그런 공부들은 아니라고 난 정리했다.
진짜 길고 스트레스였던 중국어 시험 전.
이상하게 항상 시험 당일 날 아침은 공부가 참 안된다. 무한도전 유튜브에 유혹당해 아침 치즈스틱을 먹으며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 것 말곤 나름대로 아침 또한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선글라스도 까먹지 않고 잘 준비했으며,
무엇보다 리쿠랑 용빈이가 얼마 전에 사줬던 새로운 가방이 오늘 내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들었다.
시험은 중학교 때 중간고사 시험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봤다고 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기분 좋고 짜릿한 느낌. 끝나고 애들이랑 뭐 하고 놀까를 떠올릴 법한 후련한 시험이었다. 중국어 수업 교수님은 이상하게 교수님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소수정예 수업, 많이 친해져서 그런지 “쌤” 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이번 수업 마지막 강렬한 포옹과 애들끼리 사진을 찍고,
비슷한 느낌으로 영어 수업까지 마치곤 추운 바람을 뚫고 우리들은 버스에 몸을 옮긴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 아침에 먹고 남은 계란에 밥이나 비벼 먹을까 싶다가…
중요한 시험도 끝났겠다 집 바로 전 정류장에서 내려 스시집을 들어간다.
내가 자주 가는 스시집은 쿠라스시라고 일본의 체인 회전 초밥집인데,
번호표를 받고 녹차를 만들고 주문을 기다린다.
나는 이 순간이 그렇게 좋더라…
어쩌면 배불리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보다 이 순간을 느끼고 싶어서 이곳을 자주 찾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 시험이 끝난 나름 거사를 치른 리쿠와 함께 저녁 운동을 하고
리쿠에 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돈키에 도착
내일 먹을 아침 볶음밥 냉동과 진저에일 한 병을 사고
냉장고 깊숙이 두어 샤워하고 나와 타 마실 글렌피딕 하이볼을 떠올린다.
샤워를 하고 바디로션을 바르고 스킨로션까지 오랜만에 꺼내 바른다.
평소 로션은 절대 안 바르는 나로선 로션을 바른 이 날 이미 나에겐 특별한 하루다.
이대로 자긴 아쉬운 것 같아서 스피커에 mo better blues 를 찾아 틀고,
시험 기간 때문에 밀렸던 설거지를 하고, (평소에도 常常 밀리긴 하지만 )
세면대까지 한 번 시원하게 닦고 나면 오늘 내 하루는 번쩍이는 이 세면대처럼 아름답다.
설거지를 버티게 해 준 글렌피딕 하이볼을 드디어
얼음을 바닥에 넣고 위스키 두 잔 정도양으로 강하게 시작한다.
글을 뱉어내볼까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가, 뭔가 오늘은 아이패드 키보드의 타자음이 그리워서
유니폼을 바꿔 입고 글을 써내리기 시작한다.
창문 옆으로 강한 바람 소리가 불고,
조용한 재즈 음악과 하이볼을 마시며 글을 쓴다.
내일은 심지어 수업도 없는 날이고, 오늘은 설날이지만 난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감사함과 이유모를 외로움이 공존하는 여기
감히 낭만스러운 하루라는 워딩을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