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침묵의 시간

시는 연애편지다

by 변미용
시는 연애편지다 하는 말에 나는 동의하네.
간절하지만 끝이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짝사랑.
그리고 또한 애가 타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애가 타게 그니에게 나를 열어 보이고 싶어질 때,
그러나 일상의 말들이 너무 쩨쩨하여 다 부질없어지려는 텅 빈 침묵의 시간.
수줍게 내어 보일 내 마음의 일기.
시는 한편으로 보면 그런 것이라고 믿고 있네 그려.
아주 수줍어야 하지, 아주 은밀해야 하고,
아픈 비밀을 고백하듯,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아주 어려운 일이기에 그니에게 마땅이 털어놔야 할 일.
아주 어려운 일이기에 그니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걸세 그려....
-시인 오상룡 《텅텅 가벼윘던 어떤 꿈 얘기》 자서 중에서


근 2주간을 저녁의 쉼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성과나눔한마당 행사를 마치고도 이런저런 계획과 보고에 따른 행사 시나리오를 여러 개 작성하면서,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이 점점 나를 '침묵'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년시절 내가 꿈꾸던 글쓰기와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현실이 괜스리 슬퍼졌다.

그래서 오늘은 과감히 야간 근무를 포기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쯤은 내 머릿속에 감정없는 글 대신, 감성 있는 글을 선물해도 되겠지~

관사에 들어와 책들을 뒤져 시집 한 권을 꺼냈다.

지난 가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그러나 금세 이십대의 친분으로 똘똘 뭉쳤던) 시창작동아리 사랑방 식구들과 과거의 추억들을 소환하다가, 우리의 가슴속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고 떠나간 상룡이를 먹먹하게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날밤, 상룡이가 남기고 간 유고 시집을 꺼내어 읽고는 정선으로 오는 길, 시집을 가져왔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 번 시집을 펼쳐보았다.

읽을수록 행간에 숨어있는 상룡이의 표정과 말투들이 떠올라 코를 훌쩍였다.

그래, 우리에게도 이렇게 투명하게 채워지고 비워내고, 밤을 새며 비평하고 논쟁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 시절의 내 나이에서 두 배가 되어버린 오늘,

열정과는 조금 다른 치열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한발짝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보자 다짐해본다.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며, 마음만은 천천히 늙어야지~다독여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