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재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by 변미용

가끔...마른 목을 축이듯이 시가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점에 들러 시간이 얼마만큼 흐르는지 깨닫지 못한 채, 서점의 '시'코너에 진열된 시집들의 제목을 쭈욱 훑어보고, 익숙한 시인의 신간과 내 감정에 꼭 맞는 시집 제목을 보곤 뽑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시집을 산다.

오늘 그렇게 세 권의 시집을 샀고, 세 권 모두 문정희 시인의 시집이었다.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남자를 위하여], [찔레]
그 중에서 첫번째,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를 읽어보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문정희 시인답게 속내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시어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무엇엔가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 중에 인상적인 시 한 편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마무리할까 한다.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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