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재

부유하는 청춘들의 발랄한 무게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고

by 변미용

문진영-1987년생이란다.
87년생이면 도대체 몇살??? 그러면서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녀가 태어났구나...통통 튀는 신세대 작가와 이젠 별걸 다 계산하는 독자, 나와의 간극을 생각하며 웃어본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다른 건 없다.
이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으로 2009년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문진영의 장편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앞으로 10년 후, 아니 5년 후 쯤 책날개에 적힐 그녀의 약력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라는 예견을 해본다. 어설프고 깊이있진 않지만, 수많은 책을 읽어냈던 독자의 예견이니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담배, 비, 고양이, 맥주, 편의점, 피씨방...'
여러 번 언급되던 단어들을 표현하던 그녀의 신세대다운 톡톡 튀는 발랄함이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며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의 첫모금같이 시원했다.
물론 소설 속의 내용들은 결코 발랄하지만은 않다.
대학을 휴학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와 취업준비생인 나의 대학선배 'M', 그리고 편의점에서 7년째 일하는 중인 "J', 편의점 옆 까페에서 일하는 '물고기' 이렇게 네 사람이 소설의 주축이다.
강남의 편의점을 배경으로 최저임금의 경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현실과 미래 사이에서 방황하고 부유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세태를 반영한 듯, 이들에게는 사랑도 심각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심각한 것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사랑도, 일도, 가족도, 현실도, 다가올 미래도 내리는 비에 적셔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의 경계에서만 맴돌뿐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나와 M은 그 경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는 내가 무섭다지만, 사실 나는 그가 무섭다. 그는 내게, 내일이면 모양을 바꿀 저 '오늘의 달'과, 이 밤을 지나면 그쳐 있을 이 엷은 비,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담배냄새와 나를 스쳐지나가는 골목길의 모든 고양이를 의미했다."는 나의 생각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성을 쌓아놓고 타인을 들여놓지 않으려 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보여지듯, 그들이 쌓은 성이라는 것은 너무도 허약하다. 늘 어디론가로 떠나기를 갈망하는 '물고기'의 표현처럼 여행할 때 짐은 가벼울수록 좋으니, 가능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얼키고설킨 인연의 끈들은 그들끼리의 성을 연결하고 있었고, 툭하고 끈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을 지탱하던 견고하기만할 것 같은 성은 신기루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작가인 문진영은 그 무거움의 순간도 소설의 서두와 연결시켜 잘 희석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너무 우울해서 무겁지도 않고, 너무 명랑해서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이십대를 앓았거나 앓고 있다.
창문을 열면 미묘하게 느껴지는 '비냄새'처럼, 알 수 없는 열병들로 가득찼던 이십대의 기억들이
다시금 비가 내리면, 묘한 일렁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레종 멘솔, 말보로 라이트, 디스 플러스...' 작품 속에 등장했던 담배 한 개비의 시간들이 어쩐지 유혹으로 다가오는 오늘.
"비라는 게, 우리를 총체적으로 흔들지 않나요? 비 내리는 모습, 비냄새, 빗소리, 피부에 닿는 느낌이랄지."라는 작품 속의 말처럼
나도 총체적으로 흔들리며, 걷고 있다.

오늘은 비오는 고속도로를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를 일곱번쯤 되풀이해 들으며 달려왔다.

비~~맥주 한 잔 해야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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