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서재

정유정을 이야기하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읽고

by 변미용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진이, 지니'


작년 초에 '진이, 지니'를 읽고 나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동안 읽었던 작가 정유정의 작품들을 적어보았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정유정의 이름을 알린 거의 모든 작품들이다. (물론 초기 청소년 문학 작품 2권 정도는 생략되어 있다.)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책이 그 때, 유일하게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서해 바닷가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내 여름휴가와 함께 했다.(그런데 이제서야 글을 쓰는 이 게으름이라니...)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정유정 작가의 '완벽한 팬'이다.

물론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어둠과 인간 본연의 악...등이 가끔은 섬찟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체들이 주는 명확한 전달력과 스토리 구성에 늘 감탄하곤 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책은, 지승호라는 전문 인터뷰어가 정유정 작가를 인터뷰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정유정이 간호사를 거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근무를 거쳐 작가로 첫 발을 내디딜 때까지의 과정,

그리고 작가서로 작품들을 써나갔던 시간들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어느 한 순간, 인생이 바뀔 정도의 작가적 천재성을 발휘한 작가로 기억될 법한데,

그녀에게도 아픈 성장의 기억들이 있었다.

몇 번에 걸쳐 공모전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공모전 예선전에 통과하며, 역시 처음으로 그녀의 소설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가를 들었다는 내용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았다.

'이 작자는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 든다'

분명, 저자도, 글쓴이도 아닌 '작자'였다...그리고 앞선 문장이 '개나 소나 문학한다고 덤비는 현실이 슬프다.'라는 한탄이었다고 한다. 며칠을 앓다가 일어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충격 끝에 소주를 사러가던 길,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만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접하고는 절판된 킹의 소설들을 모조리 사 읽고, 분석하고, 필사하며 이야기가 무엇인지 새로 배워나갔다고 한다.

그러니...정유정의 작품이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갖게 된 것이 천재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530&cid=58819&categoryId=58835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끔씩 느껴지는 섬찟함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내 심장을 쏴라'를 제외한 작품에 등장하는 악인에 대해서, 그 '악'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를 정유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지닌다. 그 내면에는 햇빛이 비치는 탁 트인 벌판이 있고 빛이 들지 않는 '심연'이라는 어두운 숲이 있다. 이 숲에는 인간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 온갖 야수들이 잠들어 있다. 질투, 시기, 분노, 증오, 혐오, 욕망, 쾌락, 공포, 절망, 폭력성...이 야수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 어두운 생명체들은 점화에 의해 각성되는 것이다. 이 숲은 민들레 홀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날아와 형성된 것이 아니다.
(중략)
...내 소설은 우리 안에 잠든 어둠의 생명체를 이야기의 주술을 빌려 밝은 들판으로 불러낸 이야기다. ...독자들이 내 소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면서 곧장 이 정체모를 생명체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라는 점에서 불안과 긴장, 경계심을 느끼게 되는 거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도. '왜?'라고 자꾸 물어야만 한다. 그걸 문학으로 묻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작가 정유정의 문장의 색이 확실한 만큼 문장에 대한 나름의 원칙도 언급되었다.

첫째, 필요한 것만 쓴다. 필요 없는 건 쓰지 않는다. (작가는 이것을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불렀다.)
둘째, 미학성보다 정확성을 우선한다. ('뛰다'보다는 '내닫다', '치닫다', '쇄도하다'라는 식으로...)
마지막으로, 감탄사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작가를 꿈꾸는 작가지망생이라면 정유정이 스티븐킹의 소설을 필사했듯이, 정유정의 소설을 필사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인용하며 긴 글을 마쳐본다.


<26쪽>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