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갔다가 수영장에 가자

워킹맘의 저녁수영일기10

by 세봉보르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가족? 회사? 가사 일?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오로지 '내 마음'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3년 전, 독일 출신 현대 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가끔이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라는 제목의 전시를 보고 내 좌우명으로 삼았던 구절이다. 내 마음대로'만' 행동하는 건 안되지만 내 마음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별안간 불안한 마음이 휘몰아칠 때, 짜증이 솟구칠 때, 화가 날 때-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나뿐인데 종종 이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종종거리다 보면 몸의 에너지는 바닥이 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어진다. 짜증의 화살은 남편과 아이들에게로 간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무디게. 그 화살은 반동을 받아 다시 나에게로 오기도 한다.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보면 어떤 말을 해줄까. "쟤 왜 저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자 방으로 간다. "여보 나 10분만, 얘들아 엄마 10분만 쉴게." 지금 멈추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이 애타게 필요한 극 I인간은 그렇게 방으로 도망친다. 잠시 명상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예민한 귀와 신경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10분 동안 잠시 눈을 붙이거나 핸드폰을 보며 쉰 후엔 다시 부엌으로 나가본다. 이상하다. 이유도 없는데 몸이 축축 쳐진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던데, 냉장고에 넣어둔 삼겹살을 구워본다. 치이칙- 거리는 소리에 기분도 환기된다. 가족들 먹일 생각에 다시 힘도 내본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곤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마음엔 얇은 습자지 한 장이 있다.

삼겹살 구워 기름으로 잔뜩 뒤덮인 주방을 놓아두고 다음 스테이지는 수영장이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일단 고기 앞으로 갔다가 수영장으로 간다. 채웠으면 비워야지. 수영하며 칼로리도 비우고 마음도 비운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 숨은 좀 차지만, 뭐 어때!





p.s. 수영장 실내 공사로 11월부터 한 달 넘게 수영장에 못 가고 있는 신세. 저녁수영일기의 행보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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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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