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과 멀어지는 시간

워킹맘의 저녁수영일기9

by 세봉보르

'샴푸 떨어졌네, 쿠*에서 시켜야겠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 애들 외출복이랑 잠옷 사야 해.'

'유치원 행사 공지 사항도 확인해야 하고, 또 내가 뭐 하려고 했더라?'

이 맥락 없는 플레이는 나의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to do list'들이다. 'to do list'로만도 벅찬데 각종 알림과 광고성 메시지가 핸드폰과 워치에 콤보로 울려댄다. 일하다가도 살림하다가도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을 붙잡기 일쑤이다. 해야 할 일만 마치고 얼른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인스타에는 왜 이렇게 재밌는 영상들이 많은 걸까? 시간 도둑이 따로 없다. 좀 오래 봤다 싶어 시계를 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정신 차리자, 이러다가 스마트폰 중독되겠어.

각종 숏폼에 뇌가 녹는 기분이다. 뇌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절대로 숏폼만은 시청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겐 숏폼은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유튜브 숏폼은 보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숏폼은 상대적으로 죄책감이 덜 하달까, 접근성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지인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인데 주객이 전도됐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면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보기 시작한다. 30분, 1시간은 우습다. 볼 땐 좋았는데...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면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든다. 아, 오늘 밤도 망했다.

추석 연휴 동안 수영장에 못 가고, 그 후에 찾아온 생리 주간, 남편의 서울 방문 일정 등등. 어쩌다 보니 차일피일 수영장 재등록을 미뤘다. 이러다가 10월 한 달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10월 마지막주 월요일 저녁, 수영장으로 향했다. 근 한 달 만에 가는 수영장이라 긴장도 되었다. 수영을 쉬는 동안 몸무게는 2kg이나 불어났다. 운동을 쉬니 어깨가 더 아픈 것 같다. 물에 뜰 수는 있는 걸까?

긴장하며 맨 뒷줄에 서서 천천히 수영을 시작했다. 다행히 물에는 뜬다. 어색하지 않다. 물이 나를 다시 받아준다. 왜 그동안 안 왔냐고, 나는 언제나 여기 있었다고 맞아주는 기분이 든다. 강사님과 동료 회원들과 인사도 나누고, 천천히 다시 시작한다.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이 좋은걸 왜 그동안 안 했을까? 수영을 하며 나의 몸과 호흡과 정신에 집중한다. 수영장 속에선 핸드폰 알림이 없다. 액정 화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과 나만 남는다. 핸드폰과 온전히 멀어지는 시간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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