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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Sep 18. 2023

길치

길 잃기가 제일 쉬웠어요.

나의 머릿속의 공간들은 찰칵이는 사진으로 간직되어 있다. 덕분에 갔던 길이 아닌 새로운 골목으로 향하면 공간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장점과 한 곳을 적어도 5번 이상은 가봐야지 혼자 찾아갈 수 있다는 아쉬운 점이 공존한다.

그렇게  길치가 떠난 첫 유럽 여행의 로마에서 난 길치로 살아가기로 받아들였다.

지도를 보며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느라 보는 건 땅과 지도뿐이고, 그 와중에 소매치기 조심하라 온몸에 잔뜩 긴장을 해서 숙소에 도착하면 하루를 되새기면 간직할 새도 없이 기절하고 말았다.

아이러니 한건 지도를 봐도 지도를 봐도 난 길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때마침 휴대폰은 배터리가 5% 미만이 되고, 최소의 안전을 위해 방전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난 그냥 길치로 걸어 다니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국경을 넘을 일은 없고

잘못 가봐야 로마시내 안에서 뺑뺑 돌겠거니

그러다 너무 지치면 숙소가 있는 근처역으로 어떤 교통수단으로만 가면 나는 안전하다!  이렇게 지도 보기를 포기하고 걸었다.

며칠간 발에 불이 나게 걸었던 로마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내내 난 육군사관학교 여생도가 되어있을 나의 미래만을 그렸고 확신했다

 3번의 도전을 끝으로 도전의 모든 기회를 잃고 난 또 내 인생의 길치가 되었다.

길을 걷다 커다란 버스에 부딪혀 고통 없이 순간적으로 죽었으면 하고 씩씩하게 무단횡단을 했던 적도 있다.

길을 잃은 길치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난 지금 길치인 내가 너무 좋다.

세상이 매번 새롭고, 길을 잃은 당연한 나이기에 여유롭게 출발하여 세상을 보는 여유가 생기는 내가 좋다.


길치인 내가 길치임을 받아들이니 그제야 세상의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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