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ra Sep 16. 2023

시작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글

어릴 적 인형놀이를 시작하기 전에도 옷정리, 집안 꾸미기 등등으로 한 시간 넘게 준비만 하다가, 인형놀이는 시작도 못하고 끝내는 나였다.

회사에 입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 글을 한번 써서 추억을 기록해 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좋아 보이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중에 그걸 멈춰버리면 나의 추억들을 망치는 느낌이 들어버려서, 시작도 안 해봤던 거 같다.

어릴 적 엄마가 싸준 도시작에는 맛있게 먹길 바라는, 혹은 어제 혼낸 거를 미안해하는 마음들이 담김 작은 쪽지들이 있었다.

대화를 자주 하는 엄마와 나였지만 글이라는 건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되는 마치 둘 사이에 교환일기를 하는 비밀스럽고 솔직한 사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생일이나 기념일들에 선물에 함께 카드를 전해주는 건 나만의 특별한 표현이었다.

회사 업무를 할 때도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지 않고, 이것저것의 요청들이 너무 많이 들어올 때면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시작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면 백지 위에 내가 해야할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사실 머릿속에 있던 복잡함들이 허구였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글이란 건 가시화하여, 사실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었던 어떤 그 시기에는,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포스트잇에 잔뜩 적어, 나쁜 생각들은 불로 태워버리는 행위만으로는 직접 화내지 못했던 상대들에 있는 힘껏 화풀이도 해보고, 싸운 느낌이 들어서 홀가분했다.

이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취미이자 위로였고, 어쩌면 특기였을 수도 있는데,,, 시작이 힘든 나는 미루고 미뤘었다.


그러던 문득 2023.01.31 한해의 첫 번째 달을 마무리하면서, 한 달 동안 차곡하게 쓰인 일기가 참 고맙고 생각보다 글쓰기는 재미나고, 시작이란 것도 대단하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다가 그냥 안 하면 되는 나의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긴 시간 나를 기록하는 첫발이 될 수도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