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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Mar 15. 2021

잘 늙어 가는것


   


 

“복수초가 만개해 밭을 이룬 곳이 있어요. 내일 보러 갈래요?”

안부를 묻고 지내는 안선생님이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온라인 강의가 있지만 복수초라는 말에 귀가 솔깃합니다. 게다가 밭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인적 드문 산길에서 추위에 꽃망울을 꼭 여민 복수초 두 송이를 간신히 보고 온 터라 얇은 귀가 팔랑댑니다.

“그곳에 보기 드문 흰색 얼레지가 올라왔는데 내일은 꽃이 필 것 같아요.” 

난 아직 보랏빛 얼레지도 못 봤는데 보기 어렵다는 흰 꽃이라고 하니 팔랑귀가 아예 두 팔을 벌리고 춤을 춥니다. ‘이동하면서 온라인 강의는 들을 수 있을 거야.’ 안선생님이 다른 멤버를 찾기 전에 얼른 대답합니다. 

“갈게욧.”    



겨울추위에 잔뜩 몸을 움츠렸던 식물은 따스한 봄볕에 잎을 데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레지는 넓적하고 두툼한 이파리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수색 나가는 군인들이 위장한 것처럼요. 얼레지는 첫 잎을 틔운 지 7년이 지나야 꽃을 피운다고 들었습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에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추위가 남아있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더욱 위험한 모험입니다. 7년여의 시간 동안 비축한 에너지가 적당한 어느 날, 산비탈 언덕에 봄볕이 허락한 잠시 얼레지는 꽃잎을 엽니다. 자신을 찾아 올 곤충을 위한 시간일 것입니다. 일곱 번의 봄을 기다린 얼레지를 만날 생각을 하면서 짧은 밤이 지나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화암사로 오르는 길 입구의 나무 표지판에는 “잘 늙은 절” 이란 안도현 시인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어떤 곳 이길래 잘 늙었다고 했을까, 잘 늙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암석과 돌들이 거친 산에 좁지만 야트막한 길이 산모롱이를 돌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바위를 적시며 내려온 맑은 물이 개울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가득 차 넘친 물이 맑고 높은 소리를 냅니다. 저쪽 모롱이를 돌면 잘 늙은 도사님이 나타나 ‘어서 오시게.’ 할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복이 소복소복 들어올 것처럼 밝고 환한 꽃입니다

경사가 가팔라져 숨이 가빠질 쯤 비탈 아래에 멈춰 다리쉼을 합니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노란 꽃들이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복수초가 활짝 꽃잎을 펼쳐 태양광을 모았는지 반짝거림에 눈이 부십니다. 

“와, 예뻐라! 여긴 온통 복수초 밭이네요!”
 꽃은 사람을 위해서 피지 않았지만 사람은 꽃을 보고 감탄하고 감동합니다. 얼음 사이에서 추위를 뚫고 꽃을 피운다고 얼음새꽃이라고 하는 복수초를 보면 누구라도 탄복하지요. 복수초는 추위에 무릎 굻지 않고 역경을 헤치고 나와 복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도 복이 오는가봅니다. 복수초를 발견하고 얼마 안가 얼레지도 만났습니다. 과연 얼룩덜룩한 이파리 사이에서 기다란 꽃대가 가늘게 올라와 꽃잎을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보랏빛 꽃들 사이로 보기 드문 흰색 얼레지도 찾았습니다. 낙엽이 쌓인 땅에서 올라온 흰꽃도 보라꽃도 다 귀합니다. 꽃이 아직 피지 않아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화암사 계단을 오릅니다. 둥글게 패인 대문을 지나 수수한 절 마당에 들어서니 시골집처럼 정겹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기둥은 오랜 세월을 지나 둥글게 닳아 반들반들해졌습니다. 새싹이 돋으려하는 나무 우듬지를 배경으로 단정한 기왓골에 산사의 풍경소리가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극락전의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마루 끝에 앉아 잠시 아침 햇볕을 쬡니다. 햇볕이 데운 마루가 따스해서 이렇게 몇 년 늙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위를 이겨낸 7년의 시간이 보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흰 얼레지가 무사해야 할텐데요.”
 안선생님이 조바심을 냅니다. 올라오면서 삼각대를 멘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깊은 산골이 어떻게 이름이 났는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귀한 꽃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인데 왜 걱정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얼레지 군락에 이르러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험한 바위 비탈에 엎드리고 매달린 채 렌즈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뾰족하고 거친 바위틈에 어떻게 엎드렸는지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싶게 길게 누워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들은 베개까지 가져와 받치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밝은 조명을 꽃 뒤에 비춰서 강렬한 효과를 내기도 했는데 저러다 꽃 다 시들겠다 싶습니다.  


   

“쓰읍, 이게 자꾸 방해하네.”

흰 얼레지 앞에 엎드린 사람이 뒤쪽의 보라꽃을 밀었다 놓으며 혀를 찹니다. 희귀하다는 흰 얼레지만으로 독사진을 찍고 싶은가봅니다. 한쪽에서 핸드폰으로 어정쩡하게 몇 장 찍고 순서를 기다려보아도 비켜줄 것 같지 않아 내려가는 참입니다. 

“우리 가고 나면 뒤에 있는 꽃들 꺾어 버릴 것 같아요.”

안선생님이 걱정스러워합니다. 

내려오면서 마른 낙엽 위에 앉은 네발나비를 봅니다. 7년의 봄이 오기를 기다려 얼레지는 나비를 먼저 만났을까요, 카메라 후레쉬를 먼저 만났을까요.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나비의 식사와 얼레지의 수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를 바랍니다.

    

웅덩이를 가로질러 쓰러진 나무 줄기가 속이 비어 늙어가고 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에 잘 스며드는 일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합니다. 굳이 알리지 않고 기록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스며드는 것이 자연입니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담아야겠습니다. 거친 바위산 모롱이를 돌아 숨죽인 꽃 몇 송이와 잘 늙은 절이 잘 숨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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