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라고 하지만 초록 잎도, 화려한 꽃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나뭇가지 끝에 뾰족한 작은 잎눈과 꽃눈들이 돋아나있긴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합니다. 건성으로 대충 쓱 보면 삭막하네, 아무것도 없네, 할 것입니다. 잎도 나지 않은 개암나무 가지 끝에 주렁주렁 수꽃이삭이 달려 있습니다. 다 피어도 손톱 끝만이나 할까한 암꽃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수꽃은 암꽃을 마중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호기롭게 “어허 하나도 안 춥다.” 하는 것 같습니다. 멀리 있는 생강나무에도 벌어진 꽃눈들이 보입니다. 겨울눈이 벌어진 틈새로 세상 구경을 먼저 하려고 바깥을 보고 있는 노란색은 무언가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꽃을 기다리는 그리운 마음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잎도 꽃도 없는 숲 속에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돌 틈을 덮고 있는 낙엽들에서는 비에 젖은 쿰쿰한 냄새가 납니다. 상수리나무 옆의 갈색 이파리가 ‘들썩!’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본걸까?’ 눈을 크게 뜨고 방금 전 그곳을 자세히 쳐다봅니다. 바람도 없는데 낙엽이 다시 혼자서 ‘들썩!’ 하고 움직입니다. 누군가 있구나, 누굴까?, 두더지일까?, 한참을 쳐다보아도 움직임이 없습니다. 소리 안내고 참기 어려워 가만히 다가가 낙엽 아래를 파보았지만 주인공은 이미 달아난 뒤입니다. 먹다 남은 밤 껍질이 싱싱합니다. 다람쥐입니다. 다람쥐는 벌레 먹지 않은 온전한 열매는 동면 굴 근처에 숨긴다던데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 원기를 회복할 식사를 했나봅니다. 나의 호기심이 다람쥐를 위협 했으니 미안해집니다. 원래대로 낙엽을 덮어주었습니다.
계곡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빗물이 넘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크고 또렷하게 들립니다. 너덜지대인 산 위쪽에는 산사태에 대비한 사방댐이 있습니다. 바위와 돌 틈 사이로 스며든 물이 작은 보 안에 찰랑입니다. 멀리서 맑고 고운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비 개인 화창한 햇살이 퍼지는 가운데 처음 듣는 새소리는 “호로롱 호로로롱 호로롱 호로로롱롱!” 하고 높은 음을 냅니다. 앗, 저 소리는 새소리가 아니군요. 책에서만 보았던 북방산개구리가 짝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발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다가갔지만 개구리들은 귀신같이 울음소리를 뚝! 그칩니다. 사방댐 바닥은 썩어가는 낙엽들이 깔려있어서 개구리들이 후다닥 흙탕물을 일으키며 부드러운 이불 밑으로 숨어버립니다. 암컷 등에 올라타 암컷의 겨드랑이를 번식혹이 난 앞발로 단단히 움켜쥔 수컷은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발소리를 듣고 급하게 도망간다는 게 댐의 벽에 매달려 있습니다. ‘미안해. 나, 갈게. 내가 너희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길 바라.’
그날 책으로만 보았던 북방산개구리를 직접 보고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서 나는 무척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맑고 높게 들려온 북방산개구리 노래 소리는 그 후로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동안 듣고도 몰랐던 개구리의 노래 소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더니 계곡의 웅덩이에서 들리는 북방산개구리의 “호로롱 호로로롱 호로로롱”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입이 벙싯거려집니다. 웅덩이의 고인 물속에는 개구리알들이 커다랗게 뭉쳐져 있습니다. 봉긋한 알주머니 속에 콕 박힌 동그랗고 까만 점들은 벌써 길쭉해진 것들도 있습니다. 다른 알 덩어리들 속에는 기다랗게 발생한 올챙이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북방산개구리를 알게 되어 조금은 특별한 기분이 듭니다. 몰랐을 때는 그냥 개구리였을 뿐이었겠지만 북방산개구리라는 이름이 붙으니 그저 가벼운 생명이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되어서일까요. 나에게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나를 부르는 이름이 있듯이 살얼음이 낀 산 속에서도 씩씩하게 깨어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에겐 그들만의 특별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날씨는 점점 봄기운이 더해져 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올챙이들이 힘차게 꼬리치며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