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無爲)로 살아가기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내라

by 무명

2025년 12월 31일 나는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잠에 들었습니다. 당연히 해가 바뀌는 순간을 보지 못했고 눈을 떠보니 시간은 새벽 네 시 삼십 분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숙취는 없습니다. 몸은 가뿐하고 머릿속엔 창조적인 생각들이 들어찹니다. 새벽은 모든 기적을 가져옵니다. 새해 동틀 무렵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동해 바다로 떠납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해 소망을 염원합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만 조그만 동네 카페를 하는 나에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입니다.


연중무휴, 노브레이크 타임. 가족•친지의 경조사 외에는 가게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저의 숙명입니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 나는 매일 새로운 날이고 나날이 새로워진다고, 매일이 새해 처음 맞는 아침이라고 위로해 봅니다.


사실 이것은 진실이기도 합니다. 어제의 나는 잠들면서 죽었고, 오늘 아침에 기적적으로 부활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세상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2015년 12월 22일, 아버지와 단 둘이 함께 한 제주도에서




눈 뜨는 순간부터 저의 창작이 시작됩니다. 어떤 날은 새벽 다섯 시, 또 어떤 날은 새벽 다섯 시 반입니다. 오탈자가 있어도 상관없고 문법에 어긋나도 괜찮습니다. 합리적 생각이 작동할 때 다시 검토하면 됩니다.


창의적 생산 활동이 끝나면 나는 몸을 씻고 카페로 놀러 갑니다. 카페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일곱 시 전, 후입니다. 오픈 시간은 여덟 시지만 더 이른 시간에 일터로 나가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문을 엽니다.


머릿속으로 글의 주제나 구성을 생각하는 동안에 나의 몸은 저절로 움직입니다. 삼 년 동안 들인 습관은 참 무섭습니다. 애쓰는 것이 없는데 몸이 모든 영업 준비를 해냅니다. 세상에 이보다 정교한 로봇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두 개의 사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업은 카페 사장 겸 바리스타이지만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소소하게 축구 유니폼과 바람막이를 디자인해서 온라인을 통해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4년째 하고 있는 일이라 단골이 꽤 많이 생겼습니다. 아쉽게도 벌려둔 일이 많아서 확장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여 직접 모자를 디자인해서 판매해 보려는 시도도 했고 상표등록을 하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해 보고, 친구와 의류사업을 시작해 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 타이밍에 카페 운영을 시작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지금 카페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에 도전했던 일들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성공할 것이라고는 장담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인연에 따라서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죽어도 안될 겁니다. 우리의 인생은 노력보다 운과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취미로 글을 쓰고 있음에도 요즘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돈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이틀째 현금 매출을 꺼내 챙길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집착을 내려놓고 모든 것에 임하니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더 큰 움직임이 살아납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일은 최대한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커피숍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반갑게 맞아주는 것뿐입니다. 오늘 커피가 평소만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오시면 기똥차게 뽑아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로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장인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과거에는 조그마한 실수에도 자책하고 부모님께 화와 짜증을 내는 무지막지한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해프닝일 뿐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그 순간일 뿐입니다. 잠시 후 곧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쑥스러워 말로 표현은 못합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렇게나 어리석게 행동하는 나 자신을 보고선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10년 전 나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찾아다닐수록 나는 불행해졌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했고 부모님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나는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오늘도 살아 숨 쉬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쉽게 제법 큰돈을 벌어도, 그렇게 바라던 이탈리아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와도, 염원하던 나의 가게가 생겨도, 목표했던 매출을 달성해도 불행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았다면 저는 계속 불행했을 겁니다. 더 큰 매장을 열었어도, 더 큰 집에 살았어도, 더 많은 여행지를 다녀와도 그 어떤 것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10년 전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행복한 이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쉬는 시간을 틈타 집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나는 대단한 삶의 비결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를 찾았을 뿐입니다.


살아있다는 현실의 경이로움에 잠들어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오늘도 나는 나를 깨웁니다.


자유로워진 이후로 다시 묵혀두었던 사진과 버킷리스트를 열어봅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를 기대합니다. 이제 그것은 결코 괴로움도, 두려움도 아니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옵니다.


삶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어느 곳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