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즉보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진정한 나는 모습이 없습니다. 들을수도 만질 수도 없고 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나의 이름은 신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은 나의 삶, 나의 현실입니다.
고통 속에 빠져있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아름답습니다. 나와 당신은 오늘 이대로 완전합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입니다.
인간은 100% AI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그다지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기억력이 좋은 편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 전화기가 똑똑해진 덕분에나는 비로소 문과의 정점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억하지 않아도 사유할 수 있고, 외우지 않아도 연결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다만 나와 같은 상처를 입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줄어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미 모두를 용서했다. 그러니 당신도, 부디 당신 자신과 상대방을 용서해주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복수를 준비하고 있지만 복수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또 다른 카르마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합니다. 카르마를 만드는 행위는 조금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복수하지마라.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쇼펜하우어는 깨닫지는 못했지만 멋있는 말은 많이 지어냈습니다.
저는 이제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생각은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나는 생각을 아주 뛰어난 도구입니다.
생각은 이제 나에게 헌신하며, 저는 생각의 주인입니다. 생각에 대한 오해는 나와 남을 살릴 수도 나와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잘 벼른 칼과 같습니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깨어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싸움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해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싸움이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반성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지나가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고민하고 있지만 즐거운 고민입니다. 열 명을 죽이는 일이 수만 명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십만명을 살리는 길은 또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오직 모를 뿐입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번뇌를 피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번뇌 그대로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