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스마트폰 없이 살기

by 무명

지난 9월 20일, 두 번째 아이폰을 분실한 뒤로 반성의 의미로 나흘 정도 스마트폰 없이 생활을 해보았고 간략하게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좋은 점


1.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 렌즈를 가진 채로 태어났다. 두 눈 말이다. 시력은 별로 안 좋지만

2.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진짜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3. 이동하는 동안에 굳이 화면 속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 더 즐겁다.

4. 공중 전화를 찾아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닌다.

5. 소중한 사람의 전화 번호를 열심히 머릿속에 우겨넣는다.

6.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한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큰 실례인지 누군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연락조차 되지 않으면 짜증 난다.

7. 가장 아끼는 수첩에 내 글씨가 기록된다. 내 손글씨라는 서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나쁜 점


1. 기억과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다. 찰나의 순간은 금세 지나간다.

2. 듣기 싫은 소리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성난 클락션 소리 등

3. 온갖 추태를 목격하게 되어 답답해진다. 눈을 감아도 귀를 닫을 수는 없다. 마음이 무겁다.

4. 공중 전화 수화기에 절어 있는 타인의 침 냄새를 참아내야 한다.

5. 주변 사람의 연락처를 기록해놓지 않거나 외우지 못하면 연락하기 어렵다.

6.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가족이나 친구의 애간장을 태운다. 본의 아니게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


1. 소유라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니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2. 누구보다 여유롭고 느긋하다.

3. 만나는 동안에 할 수 있는 말을 다 꺼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해야 한다.

4. 3의 이유로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 전보다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5. 전화기 화면 속의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나 보면서 히히덕거릴 일이 없다. 차라리 책을 읽는다.

6. 하늘이 참 높고 푸르다던지, 햇살이 따사롭다던지, 밤 하늘의 별이 그리워진다던지... 와 같은 별 같잖은 소리도 다 지껄이게 된다.



결론

1. 스마트한 물건이 내 곁에 없으니 내가 전보다 스마트하게 된다.

2.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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