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하기 전으로 돌아가자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by 무명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아'라는 말이 사실 10년 전의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학교나 밖에서 크게 엇나가거나 사고를 치는 경우도 없었고 교우 관계도 원만해 반에서 공부 꽤나 한다는 무리, 그저 세상사는 일이 행복한 친구들이나 불량한(?) 행동을 일삼는 질이 나쁘다는 친구들을 가리지 않고 두루 사귀었다. 또한 가정에서는 말수는 별로 없지만 큰 말썽 피우지 않는 아들 역할을 아주 잘해내고 있었다.


중학교 입학 직후 초등학교 반창회에서, 이 사진 때문에
영원히 고통 받는다, 2009년 장척 계곡


입학을 하자 마자 치른 첫 중간 고사에서 436명의 동급생 중에서 전교 1등을 운 좋게 차지하는 바람에 선생님으로부터는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반대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의 끝없는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로 인한 부담감에 공부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정상이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을 겪었기 때문에...


소년은 커서...
도 여전하다, 2011년 마카오


중학교 수준의 공부야 예습이나 복습 같은 것들도 딱히 필요 없고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교과서나 참고서에 적힌 글을 읽기만 머릿속에 저절로 입력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거나 딴 짓을 한다는 건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 드럽게 재수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내 머리가 비상하다는 건 한 때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을...그 때는 그저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머릿 속에 없었다.


스무살 때 학과 MT를 가지 않은 이유.JPG


제법 오래 된 일이라 내 기억이 정확할지는 몰라도, 꿈이라는 것을 처음 가져본 것도 아마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다니고 있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누나(동경의 대상이었다)와 어쩌다 '시칠리아'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파스타와 리조또라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 아마 시험 성적이 잘 나오면 나에게 밥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으리라). 그 식당의 오너 셰프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파스타를 배우기 위해서 이태리로 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생겼다. 커서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 프랑스로 건너가 포도밭에서 포도나 재배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고 내가 키운 포도로 와인을 담가 마시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술도 마시지 못하는 주제에, 술 맛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애송이가 말이다. 쓸 데 없는 방향으로 조숙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