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첫 기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무명

아마도 네 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기억의 끝과 맞물리는 장소가 있다. 나의 가족이 사는 집은 19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세면과 목욕이나 노폐물 배출 따위가 바깥에서 이루어졌다. 한 겨울에 집에서 샤워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없는 일이었다. 화장실이 집 안으로 옮겨 들어온 지는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훨씬 더 어렸을 때는 푸세식 화장실이었으니깐 말이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결혼식에서 얻어온 꽃이 마당에서 내리는 물방울을 맞고 있다.


그 날은 왠지 아무런 이유가 없이 다리가 아팠다.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다리가 참을 수 없이 저렸다. 어린아이가 뭘 알겠느냐고. 절절 끓고 있는 커다란 양은 냄비에 앉았고 그만 뚜껑이 뒤집혀 빠지고 말았다. 연하디 연하고 뽀얗게 어린 살가죽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등과 엉덩이가 통째로 삶아졌다. 그 이후의 기억은 다시 끊어졌고 아주 띄엄 띄엄 어렴풋한 잔상만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입원실의 내 옆 자리에 누워 있는 내 또래의 친구-그 친구는 얼굴에 화상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정말 다행인 편이다, 퇴원을 하고 매일 밤 엎드린 채로 화끈림에 괴로워하다 잠이 든 기억, 작은 손주의 등을 알로에로 문지르느라 잠 못 이루는 할머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그려진다. 오늘도 그 모습들이 머릿속을 슬그머니 스쳐지나 간다.

대충 이렇게 생겨먹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괜찮다. 너무 건강해서 탈이라면 탈이다. 덕분에 군대도 안 가게 되었고 별다른 후유증 없이 아주 잘 살아간다.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별것 아닌 일에서 감동을 받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그저 그런 보통날들을 살아나가는 중이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길에 떨어진 은행열매의 찡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올 추석에도 여전히 태어나고 자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