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유일한 장소

허상과의 작별

by 무명

​우리는 현실을 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각자의 ‘해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사라진 과거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끊임없이 호출하며, 그 허상을 현재 위에 겹쳐놓습니다. 기억은 편집되고, 미래는 상상으로 덧칠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를 우리는 ‘진실’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말해, 인간이 실제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한 점뿐입니다.

지금. 여기. 눈앞.


과거는 기억이라는 신경 작용의 잔향이고, 미래는 예측이라는 사고의 투영입니다. 둘 다 실체가 아닙니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호흡에 귀 기울이는 순간, 과거와 미래는 신기루처럼 흩어집니다. 남는 것은 감각뿐입니다. 의자에 닿는 몸의 무게, 공기의 밀도, 혀끝에 스치는 맛.


지난 토요일, 저는 10년 전 저에게 요리와 와인의 세계를 열어주었던 ‘준스그릴’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제 삶의 한 갈래를 처음으로 구체화해 준 장소였습니다. 외식업이라는 꿈이 추상이 아닌 형체를 갖게 된 공간. 젊은 날의 욕망과 미숙함이 함께 머물던 자리.


처음 그 문을 열었던 건 2009년, 스무 살 무렵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흐릿합니다. 기억은 늘 세부를 지워버리고 감정만 남깁니다. 저는 2015년에 그곳에서 일을 배웠지만, 끝내 남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의 말들은 날카로웠고, 저는 그것을 애정이 아닌 비난으로 해석했습니다.


“너는 이게 문제다, 저건 저래서 문제다.”


그 말은 저를 깎아내리는 문장처럼 들렸지만, 어쩌면 다듬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저는 지나친 간섭에 그 자리를 떠났고, 요리가 아닌 커피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선택이라기보다, 버텨내지 못한 결과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그 가게를 찾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움과 미움이 뒤섞인 감정은 묘하게 사람을 과거에 묶어두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문을 다시 열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의 장사 경력은 이제 30년을 넘겼다. 세월은 사람의 기세를 낮추지만, 밀도는 높이는 듯합니다. 저녁은 예약제로만 운영된다고 합니다. 규칙은 여전히 엄격하기만 합니다.


슬리퍼와 츄리닝은 입장 불가.

초등학생 출입 불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불가합니다.

식사 중 물은 금지, 물은 식전에만.

파스타와 피자에는 콜라 대신 와인.

된장 파스타에는 레드와인 대신 다른 선택을 권하십니다.

설탕과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계십니다.

책을 좋아하시지만 취향은 좀 바뀌신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독하고 계셨습니다.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은 공간.


처음에는 그것이 고집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세계관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모든 공간은 결국 ‘선택과 배제’로 이루어집니다.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에 따라 그 장소의 윤곽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없는 가게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신촌이라는 파괴되기 직전의 상권에서 30년 동안,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온 힘의 원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음을 넘어서 자연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첫 입에는 “음?”이라는 의문이 먼저 온다. 그러나 몇 번 더 씹다 보면 혀가 정돈되고. 맵고 달고 짠 자극에 길들여진 감각이 서서히 풀어집니다. 토마토 파스타에 드문드문 박힌 페페론치노 씨와 굵은 후추가 서로 다른 결의 매운맛을 만들어냅니다. 칠레 와인의 스파이시함이 겹쳐지며 매운맛은 층을 이루어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음식이 식어가면서 또 다른 국면이 열린다는 점입니다. 뜨거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산미와 향이 올라옵니다. 배는 조금씩 차오르고, 취기는 은근히 스며듭니다. 우리는 늘 ‘최상의 온도’를 말하지만, 어쩌면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진짜 경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할 뿐입니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제가 과거를 미워했던 이유도, 부끄러워했던 이유도 선명해졌습니다. 저는 그때의 저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사장님이 아니라, 미숙했던 저 자신을.


지금 생각해 보면, 저의 커피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집착은 그곳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허용과 배제. 원칙과 태도. 감각을 길들이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봄이 오면 텐퍼센트커피에 이어 저만의 색을 갖춘 두 번째 매장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전에 한 번 더 그곳을 찾을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과거를 복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음식에 대한 설명은 직접 들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


삶은 과거의 복습도, 미래의 예행연습도 아닙니다.

그저 한 순간을 얼마나 진실되게 살아내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Chopin: Nocturnes, Op. 9: No. 2 in E Flat Major
신촌을 못가, 포스트맨


사족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결국 열등감의 소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드리자면, 열등감이 사라졌기 때문에 열등감이 사라진 것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와, 나는 꿈에서 깨어났어.”라고 굳이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