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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Mar 27. 2020

시험관 실패, 다시 난임

 - 난임 일기

“수치가 안 나오셨어요.”     


1시 전까지 주겠다는 전화가 12:31에 걸려왔다. 월요일(3.23)에 몸이 좀 피곤한 듯했고, 화요일(3.24) 오전의 테스터기 결과는 단호하게 ‘음성’이었다. 화요일부터 시작된 갈색 혈이 수요일 정오를 지나면서 빨간 혈로 바뀌었다. 배에는 전체적으로 통증이 있었다. ‘아,, 정말 아닌가’ 싶으면서 ‘아직 모른다’는 희망도 있었다. 출혈이 멈추질 않아, 피검사 일정을 하루 당겨, 목요일(3.26)에 병원을 방문했다.      


내게 이식한 3개의 배아


“화요일부터 갈색 혈이 있었고, 수요일부터 빨간 혈이 계속 나오고, 지금도 그렇고, 배에는 통증이 있어요.”   

  

선생님도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작년 12월에 진행했던 인공수정에 따르면 나는 주사제 없이도 착상되는 몸이었다. 게다가 이번 시험관 시술의 배아, 난자/정자의 질, 자궁 상태 무엇하나 나쁜 조건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왜 이런 걸까요? 선생님은 ‘실패’라는 단어를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다음 차수에는 장기 요법으로 프로토콜을 바꿔 진행하면 어떻겠냐며, 애써 이번 시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에둘러 알려주셨다.
 

온전히 남편의 몫이었던,  배주사

남편과 나는 이상이 없었다. 우리가 열 띄게 매주 사랑을 나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5년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 여보가 나의 남편이라는 게 천만다행. 항상 옆에 있어 주고, 새벽마다 자괴감을 주는 배 주사도 그의 담당이었다. 이번 주 화요일부터 툭하면 터지는 내 울음도 온전히 그의 몫. 그도 분명 마음이 좋지 않았을 텐데. “여보, 우리 건강하잖아. 다음에 될 거야.” 피검사 후 병원을 나오면서 그는 또 한 마디 위로를 건넨다.      


난임 병원을 다닐 필요가 있느냐 묻는 남편을 병원에 데려간 게 2019년 여름이었다. 혹시 모르니 검사만 할 생각이었는데, 나팔관 검사, 정자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으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문제가 없다니, 시술 들어가면 바로 생기겠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2019년 12월 인공수정, 2020년 3월 시험관 시술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울다 자다를 반복하다 저녁 먹는 시간이 되어 눈을 떴다. 오늘 검사 결과를 듣고 평소 연락도 잘하지 않던, 시험관으로 출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대학 때 친구에게 전화했다. 시험관 때문에 전화했다는 내게 친구는 ‘지금 마음이 안 좋은가 보구나’라고 했다. 나를 바로 알아채 준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 이 얘기 저 얘기 많이도 했다. 평소에 챙기지도 않다가 이럴 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말했다. 친구는 “원래 사는 게 그렇잖아. 그래도 연락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고마웠다. 자고 일어나니 그 친구가 보내온 장문의 톡이 와있었다. 미안해하지 말고, 어려워하지 말고, 언제든 연락 달라고. 울고 싶으면 울고, 놀고 싶으면 놀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하고 싶은데로 지내라고. 남들이 뭐라 하든 네가 하고 싶은데로 편안하게 지내는 게 제일이라고. 톡을 보면서 또 한바탕 울었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저녁상과 설거지까지 도맡아 처리한 남편과 산책을 했다. 내일 점심에는 스파게티를 해주겠단다. 샐러드에 치즈를 갈아 얹고 탄산수랑 같이 먹자고. 응, 그래. 그러자. 맛있겠다. 산책을 하고 나니 아랫배 통증이 많이 준 것 같다. 걷고 움직이니 몸속 잔여물도 빨리 배출되나 보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추웠다 더웠다 반복하던 몸도 이제 정상화되겠지. 그래, 빨리 지우고 어서 잊자. 아가는 곧 올 테니까. 어서 몸이 회복되기를. 마음도 아물기를.     


“여보, 좌훈기 하나 살까? 자궁에 좋데. 4월에는 보약 지으러 가자.”     


위로 천재 우리 남편.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이번 시험관 진행으로 생긴 몸과 마음의 생채기가 조금씩 아무는 듯 하다. 나도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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