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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Mar 28. 2020

시험관의 흔적, 통증

- 난임 일기


“엄마, 나 잘 안됐어.”     


눈물을 쏟을 것 같아 하루를 참았다 전화했다. 별일 없지? 응, 나도 잘 지내. 평소와 다름없는 안부로 인사를 나누고, 엄마한테 참았던 사실을 말했다. 시험관 결과가 나왔다고. 잘 되지 않았다고. 어떡하냐 물으셨다. 응, 괜찮아. 엄마, 너무 속상해하지 마. 다음에 될 거니까. 엄마는 네가 더 속상하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리셨다. 울음이 날 것 같아 코를 틀어잡고 대충 대답한 후, 급히 전화를 끊었다.       


배가 아프다. 많이. 자주.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가기 전부터 시작된 아랫배 통증은 3일이 되도록 사라지질 않는다. 어제저녁에는 좀 나아졌나 싶어 산책과 운동을 챙겼다. 샤워하는데 울컥, 주먹만 한 피 덩이가 몸에서 쏟아졌다. 이걸 내보내려고 그렇게 아팠나 싶다. 매달 3일이면 끝나던 달거리도 오늘로써 4일 차에 접어들었다. 시험관의 흔적은 고스란히 내 몸에 남아있다.     


다음 주 초에 한약 도착할 거야.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남편과 나 각각에 맞게 보약을 한 재씩 지었다고. 아는 한의사가 있어서 좋은 약재들로 저렴하게 샀으니 잘 먹으라고. 남편의 통풍이며, 나의 알레르기도 고려해서 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몸만 생각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자꾸 코를 틀어잡게 된다.       


2020년 3월 3일, 두 달간의 (시술) 휴식 후 찾아온 생리의 둘째 날이었다. 병원 상담실에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시험관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서. 주사가 처방되었다. 채취가 있기 전까지, 8일간 말로만 듣던 배 주사를 이행했고, 그 덕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적당하다는 12개의 난자를 채취했다. 그리고 건강한 수정란 9개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늘과 그다지 멀지도 않은, 하지만 아득하게 느껴지는, 3월 14일 이었다.


엄마한테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아빠는 갑자기 신문에 실린 이 광고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다. 암, 압니다. 아부지.



세자로 태어났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했던 사람, <사도>에 대한 영화를 봤다. 누군가는 자식을 낳아 기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자식을 왕좌에 앉힐 생각에 기뻐한다.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 누군가들의 생각과 감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느라 점점 예민한 성정으로 변하고 결국 ‘자신’을 잃어간다. 통증으로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어 찾아본 영화를 통해, 나는 다시 지난 20여 일간의 행적을 복기한다. 나에게 오기만 한다면, 와주기만 한다면, 누군가의 눈치를 볼 상황 따위는 애초에 만들지도 않을게. 지켜줄게. 행복하게 해 줄게. 꿀떡꿀떡. 변기에 앉으면 몸에서 쏟아지는, 통증과 꼭 함께 오는, 핏덩어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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