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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Apr 03. 2020

우리 아기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 난임 일기

“새아기는 밥값 못하고 뭐 하고 있냐!”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에 인사를 갔던 첫날, 시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새아기’라는 어색한 호칭에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밥값’이라는 표현에 어퍼컷을 맞고 말았다. 아기나 손주와 같은 단어는 들어있지 않았는데, 나는 그 속내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물쭈물, 아직 결혼한 지 한 달도 안됐는데요.. 말한 게 전부였다.      


이 날의 기억은 참 오래간다. 지금도 울컥하는 걸 보면. 시부모님과 친해진 이후에 부러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그 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밥값이 경제력을 말하는 거라면 내가 남편보다 더 번다고. 손주를 말하는 거라면 그건 저희 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내뱉듯이 쏟아낸 말에 아버님은 어른이 하신 말 그리 신경 쓸 필요 없다며 한 마디로 잘라버리셨다. 시부모님은 지금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인공수정, 시험관 혹은 난임에 대해 모르고 계신다. 하여 명절이면 또 물으신다. ‘좋은 소식 있니?’  결혼 5년 차였던 작년 추석이 돼서야, 나는 말할 수 있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월요일에 엄마가 보내준 보약이 도착했다. 일하고 있는데 톡이 잉잉 울린다. 엄마의 각종 주의사항이 하달된다. 가능하면 식후에, 아침/저녁으로 따뜻하게 데워서 한 포씩 먹어라. 숙주나 무는 먹지 말아라. 기타 영양제나 양약과 병행해도 되지만 동시에 먹지는 말아라. 주의사항을 남편에게 공유하고 약속을 했다. 아침, 저녁에는 보약을. 점심에 회사에서는 비타민을 챙겨 먹자고. 엄마와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 덧 붙였다. ‘다음 시술은 내가 잘 진행하고 결과 나올 때쯤 알려드릴게요.’ 나 모르게 기도드리고 눈물지으셨던 엄마는 그러마라고 짧게 답하셨다.      

<오 베이비> 224~225p 임신소식을 들은 주인공 부부


‘마흔 난임 부부의 고군분투 그림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오 베이비>를 읽었다. 착상조차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던 날, 온라인 서점을 뒤져 난임과 관련해 주문한 책 중 하나다. 다음 웹툰에 연재해 인기를 끌었던 만화라고 했다. 남편과 아내가 퍽 사이가 좋다. 마치 우리 같네. 피식 웃는다. 여백은 많고 글은 적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기다리던 피검 결과를 들었을 때의 허무함, 굴욕 의자에 올라가 채취나 이식을 기다리는 불안함, 분만실에서 나오는 산모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그 마음들이 너무 와 닿아서. 내 얘기 같아서. 다행히 책 속의 부부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남편에게 이 책 꼭 읽어보라 했다. 우리가 그 기운을 닮아가자고.


4월이 되면서 기상 시간을 30분 당겼다. 아침 운동, 출근 준비, 아침밥 먹기에 '데운 보약 먹기'가 추가됐다. 점심때 사무실에서는 잊지 않고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에는 산책으로 1만보를 걷고, 나머지 부족한 운동을 채운다. 우리의 난임 시계는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곧 나도, 우리 부부도, 주인공 부부와 같은 그런 해피엔딩을 맞이할 거다. 꼭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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