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임 일기
“병가를 8일 내셨네요. 병가 8일 차부터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주셔야 합니다.”
인사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아, 네 알겠습니다. 증빙서류, 네. 내가 8일을 냈나? 병원 방문 일 수를 세봤다. 시술 방법 논의하러 1일, 중간검사를 위해 1일, 채취 날 포함 3일, 이식 날 포함 2일, 마지막 피검사하러 1일. 아, 8일이네. 맞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피검사로 임신 반응 나와서 계속 진료 보러 가야 했으면... 그럼 매번 증빙서류를 내야 하는 건가?' 비임신인 게 다행이란 말인가 싶어 씁쓸했다. 회사 규정을 뜯어봤다. “7일을 초과하는 병가는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인사담당자는 이것을 근거로 증빙을 요청한 것이다. 머리가 아팠다. 첫 시험관에 성공했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5월에 다시 시험관에 들어가면 또 병가를 내야 할 텐데. 그때마다 증빙을 내라고? 만약 시험관을 3차, 4차 계속 진행하면 그때마다 매번?
착잡한 마음으로 서류를 발급받으러 왕복 3시간 거리의 병원에 다녀왔다. '난임, 시험관이라는 용어는 빼고 마지막 피검사 날짜에 병원에 왔었다는 내용만 적어주세요' 부탁드렸다. 난임, 시험관. 나의 증빙서류에 이 단어들이 들어갔을 때, 동료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선생님은 보통 이 서류로 많이 제출하시더라며 '진료확인서'를 써주셨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 서류는 안돼요. '진단서'를 내주셔야 해요.”
비밀리에 일을 참 잘 처리했다 싶었는데. 해당 날짜에 병원에 다녀온 것만 확인된다고 하지 않았냐 물었지만 담당자는 규정이 진단서를 제출하게 되어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팀장님께만 말씀드려 극비리에 진행했던 일을 인사담당자에게 오픈해야 했다.
"사실 제가 난임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난임진단서를 띄어오라고 했다. 병원에 다시 또 방문했다. 선생님은 곤란해하셨다. 일전의 서류로 보통 갈음이 된다 했다. 진단서에 어떤 내용을 적어줘야 하느냐 물으셨다. 난임이라는 걸 쓰길 원치 않았는데 괜찮냐.. 말끝을 흐리셨다. 결국 다시 발급받은 '진단서'에는 병명 'female infertility'와 피검사 날짜에 병원에 방문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인구절벽이라더니, 출산율이 문제라더니. 난임은 질병이 아닌데. 그런데 무슨 진단서를 내라는 거지? 난임 지원금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내가 왜 회사에 나의 상태를 밝혀야 하지? 동료들의 색안경을 내가 왜 버텨야 하지? 억울하고 눈물이 났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난 아직 해당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혹 이것마저 안된다면, 병원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휴직이나 퇴사를 고려해야 하나. 나는 회사에서 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은데. 범죄도 아니고, 징계도 아닌데,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자꾸 나를 주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