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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Sep 18. 2022

엄마가 우셨다

- 휴직 일기 


지난 1월, 나의 유산 소식을 듣고 엄마는 수술 날 바로 우리 집으로 내려오셨다. 두 손에는 미역 국거리, 재워둔 고기, 생선 등 몸조리에 필요하다는 음식이 잔뜩 들어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며 아빠는 "어이구, 뭐가 그렇게 어려워!"라며 장난을 치셨고,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짐을 풀고 말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필요에 의한 거짓 웃음도 나오지 않던 그때, 엄마 품에 안겨 꺼이꺼이 소리 내 참 많이도 울었었다.


마음도 스산했던 1월 동네 산책길


며칠을 엄마의 미역국과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내 울음이 누군가에게 전이될까. TV에는 예능을 틀어뒀고, 그 누구와도 긴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고장 난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먹고 자고 그랬다. 괜찮다..라는 긍정 회로 따위는 작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묵묵히 옆에서 보살펴주셨다. 그리고 남편이 유산휴가를 내고 온 날, 엄마를 서울에 보내드리기로 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먼저 서울에 가신 상태였다)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버스가 오기까지 터미널 의자에 엄마 나 남편 세 명이 나란히 줄지어 앉았다. 뭐라도 말을 건네고 싶은데 목이 메었다. 그러다 나온 말이 이거였다. 


 "엄마, 이런 일로 오게 해서 미안..."


딸 집에 좋은 일로 와야 하는데, 이렇게 돼... 문장을 끝맺지도 못하고 검게 가라앉은 얼굴 위로 눈물만 흘렸다. 엄마는 사람 많은 데서 왜 이러냐는 듯 옆구리를 쿡 찌르셨다. 눈물이 가득 차 앞이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다독였는데 그런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이 사십에 처음으로 아이를 품었다고 좋아했다가 이런 소식을 전해드려서 엄마한테 너무너무 미안했다. 왜 남편보다 엄마에게 미안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랬다. 


5월 엄마랑 걸었던 종로


그 일이 있은 후 반년 만에,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찾아와 주었다. 믿기지도 않고 실감도 나지 않아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남편과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병원을 다녔다. 친정에서 걸어 10분도 걸리지 않는 병원에 가서 몰래 검사를 받고 몰래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후,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임신을 했다고. 자연임신이라고. 많은 산이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문제없이 잘 크고 있다고. 첫 임신 때와 다르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래, 축하한다." 임신소식에 엄마가 해 준 첫마디였다. 


임신 16주 차에 접어들어 정기검진을 갔다. 아이의 척추가 눈에 띄었다. 와~ 저런 모양이구나! 영화 에일리언(에 빗대기는 좀 그렇지만)에 나오는 생명체의 뼈처럼 확연히 마디마디가 보였다. 경이롭고 신기했다. 그날 우리 아이의 성별도 확인되었다. 채혈을 하고 수납을 하는 사이 남편이 양가 어르신들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고 한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고. 아들이라고. 그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너무 행복하다.."


1월 겨울,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가 많이 우셨다고 한다. 몸은 아프고, 아이는 사라졌고, 삶의 희망은 모두 사라진 듯 멍한 눈으로 살아가는 딸이, 목놓아 울었으니 엄마 심장은 얼마나 쪼그라들었을까. 엄마는 휴직을 한 후의 내가 또 많이 걱정이 됐다고 한다. 운동하고 여행하며 세상 혼자 밝은 척 살고 있지만 지 속은 어떻겠냐고 자주 아빠한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이제 건강한 아들 소식을 가져오니, 엄마는 정말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이 날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도 나도 한참을 울었다. 너무 기뻐서. 행복해서.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너무 다행이다. 기쁨의 시간만 전해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쭉.  


내 마음, 엄마 마음처럼 쩅한 최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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