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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Jul 02. 2024

비오는 날, 불쌍한 날

안쓰러운 나

결국 말했다. 미친년처럼. 울부짖으며. 나에게는 끝없이 생각하고 참고 인내했기에 ‘결국’ 이지만 그에게는 ‘늘’ 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화가 났다. 내 시간을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는다 여겼다. 전날 말했던 - 난 약속이라 생각한 - 8:20은 그에게 급할 것 없는 한 지점에 불과했다. 딱히 지킬 필요가 없는. 8:20이 부여한 무게에 전날부터 부산했던 난 순간 ‘혼자 난리 친' 아내가 돼버렸다. 돌이켜보면 반복된 일이었다. 주말 데이트 약속을 했다가도 아무 말 없이 집에 눌러앉아 버렸다. 왜 그러느냐 물으면 늘 그냥 귀찮아서. 하나의 일정을 몇 주 전 잡아뒀다가도 당일 아침 ‘오늘 나가지 말자’ 로 끝나던 일. 그 한 마디에 ‘그날’ ‘그 약속’을 위해 내가 조정했던 주변 일상과 계획들이 모두 없던 일이 돼버렸던 과거.


그리고 또 반복이다. 말로 뱉어버리고 ‘네가 이행을 하든가’가 돼버리는 일. 가령 “당근 할까?” “고기가 집에 없네” ”(쇼핑하며) 이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 자신은 그저 생각나 떠벌리는 말 - 말 그대로 뱉는 - 그러나 내게는 '(언젠가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돼버리는 것들. 그래, 이건 그도 억울할 수 있겠다. 그저 생각나 말했을 뿐이야. 내가 언제 꼭 하라고 했어? 라고 항변할 수 있을 테니.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스스로 그의 용역사를 자처했나보다. 그럼 남편이 건내는 말들은 그저 ‘오늘 날씨 좋네'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거였나.


난 답을 듣지 못했다. 사과같은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아, 그랬구나. 여보가 그렇게 생각했구나. 속상했겠다.’를 바랐다. 이마저도 아니면 ‘응’ ‘그래’ 같은 평범하고 친근한 반응. 이마저도 아니면 대화에서 ‘용건을 뺀 나머지 말‘이라도. 그래, 어쩌면 이것도 내가 대단한 욕심을 부린 걸 수도 있겠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니까. 자신에게 생긴 부정적인 일은 각인되지만 긍정적인 것들은 휘발시키니까. 내가 ‘공감’ 혹은 ‘동조’까지 바란 건 내 욕심이었겠다.


그렇게 억울하고 복잡한 마음을 미친년처럼 짖고 뱉고 무언가를 바란 지 하루가 지났다.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를 않는다.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개선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이런 살지도, 안 살지도 않는 상황을 방치하는 거겠지. 그러는 와중에 당근에서 메시지가 날아와 대응을 하고, 아이가 등원을 하자마자 부리나케 오아시스에서 식재료를 샀다. 온라인 장을 보며 바나나 2키로를 담았다가 ‘배송불가’ 메시지에 1키로 짜리 다른 상품을 주문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오랜 시간 집에 없었다 말하던 그의 말이 기억나 선택한 2키로였다. 새벽배송이 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이유가 배송불가 사유였는데, 나는 그 주문고침 행위를 하면서도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적게 샀어?’라고 물을 그의 말도.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새벽배송이 안된데 라는 이유를 나는 또 설명해야하나?


지긋지긋하다. 숨이 막히게 지겹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못 밖힌 인간처럼 무언가를 자꾸 한다. 나는 지금 아무도 주지 않은 내 역할에 혼자 허덕이고 있다. 나는 그런 내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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