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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08. 2022

세놓습니다

칩거하고 수개월이 지난 뒤

방을 비웠다 너는

작은 짐 하나 남기지 않았다


겨울이 떠나고 난 후

청명해진 하늘과 곧 사라질 봄의 계절에


소리 없이 빈 추억의 방에 들어가

얇은 침대보로 나를 포옥 감싼 채로

새우처럼 모로 누웠다


수직으로 달려있는 각진 액자의 거무뎅뎅 흔적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떠난 네가 좋았다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너에게 감사했다


이젠 네가 머물던 방에 들어가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심지어 웃음이 입가에 떠오르기도 해


시간이란 건 정말 신기하지 않니


잘 머물다 잘 쉬다가 간 그대여

다음 여행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대의 마음 내가 충분히 거뒀으니


이제 방은 잠그지도 않고 활짝 열어놓은 채

방치해두어도 내 마음 아무렇지도 않으므로


다른 이를 위해 세를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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