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 Apr 12. 2022

조개껍데기

당신의 존엄에 빗댄 조개껍데기가

모래사장에 앉아 머나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내 밑으로와 숨졌다


빗물이 자박하게 파인 모래와 내 발자국에는

잘 모르는 이의 얼굴이 담겼다


서로를 향해 철썩이던 파도는

자리에 서있는 우리를 들썩이게 하고

끝없이 춤추던 감정은 새벽녘 자취를 감췄다


이정표가 사라진 갈림길에서

홀로된 사람 둘은

손바닥의 여린 면을 서로에게 비추며

잠자코 돌아섰다


걷다가 걷다가 도착한 이름 모를 바다에

너의 이름을 적은 돛단배를 띄웠다


파도가 쳐서 자꾸 내 곁으로 돌아오려는 배를

나는 몇 번이나 힘겹게 밀어내야만 했었다


비가 내리는 여름밤

새까만 바다에 별들이 쏟아졌다


먹물을 뿌린 하늘에 가득 찬 보름달이 떠도

내 눈물은 멈추질 못했다


퉁퉁 부르튼 눈으로 힘겹게 눈을 떴을 때

빗물이 고였던 내 마음은 단단히 굳어졌다


지평선에서 태양이 힐끗 고개를 내밀었을 때

소라에 담겨있는 바닷바람의 노래를 마시며

맨발로 순리의 파도 속에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통 너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