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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24. 2022

딱지

동시 1

울다가 지친 몸의 끄트머리에선

물비린내가 나요


소라게처럼 휘감긴 이불속

웅크린 새우는 등을 펼 생각이 없어요


우리 할머니처럼


눈물이 나는 건

아물어가는 상처에 진물이 나는 거래요


몇 번의 진물이 흐르고

혁혁한 공을 세운 딱지가

승리의 깃발을 힘껏 휘두르고 나면


밑에 새 살이 돋아나는 거래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살아가는 건


셀 수 없이 많은 딱지를 수집해야 한대요


남들과 비슷한 딱지도 있고요

똑같은 딱지를 세 개 가진 적도 있어요

친구들한테

한정판 딱지를 자랑한 날도 있어요


고만고만한 딱지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유일무이한 딱지를 찾으러 학교에 갈 거예요


만약 찾게 되면

우리 할머니 등도 꼿꼿이 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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