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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25. 2022

속 좁은 엘리베이터

동시 2

딩동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멈춥니다

저는 공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딩동

12층에서 멈춥니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두 명이 탑니다

고요한 엘리베이터의 잠을 깨웁니다


딩동

9층에서 멈춥니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가 탑니다

타자마자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쳐다봅니다


딩동

5층에서 멈춥니다

큼지막한 김치통을 들고 가족이 탑니다

중학생들은 마지못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줍니다


딩동

2층에서 멈춥니다

어르신이 보행기를 끌고 타십니다

도복을 입은 아이가 티 나게 한숨짓습니다


딩동

드디어 1층입니다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도복을 입은 아이가 튀어나가고

어르신이 보행기를 끌고 나가려는 양 옆으로

중학생이 몸을 피해 달려나갑니다

큼지막한 김치통을 들고나가던 가족은

지하에 있는 주차장에 갑니다

그들은 어르신이 빠져나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릅니다


저는 주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습니다

킁킁 공원을 거닐며 생각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좀 더 널찍하면 어떨까

방이 있으면 좋을 텐데

엘리베이터가 속이 좁은 것이

꽤나 속이 상합니다


잘린 손톱 같은 조막만 한 달이 떴고

닥스훈트는

똘망한 눈망울을 올려다보며

주인에게 말을 거는 듯했으나

알아채지 못한 주인은

그저 그릇에 물을 부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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