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를 다스리는 전통과 과학의 충돌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전통적으로 더위를 더위로 다스린다는 개념으로,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삼계탕, 찜질방, 사우나 등 더운 환경이나 음식을 통해 땀을 내고 몸속 열을 배출함으로써 오히려 시원함을 유도한다는 원리다. 하지만 이 개념은 실제로 현대 과학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름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래에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사람의 체온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조절된다.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거나 열에 노출되면 혈관 확장 → 땀 분비 → 땀의 증발 → 체열 방출이라는 순서로 몸은 체온을 낮추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땀의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면 실제로 일시적인 체온 하강이 가능하다. 즉, 이열치열이 일부 조건에서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땀의 증발 여부: 습도가 낮아야 효과 있음
혈관 확장 유도: 피부 표면으로 열이 이동
운동선수나 군인들은 고온 환경에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열에 대한 적응력을 키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생리적 변화를 수반한다.
땀의 양 증가 및 시작 시점 앞당김
땀의 염 농도 감소로 탈수 위험 감소
심혈관계 효율 증가
즉, 일정 기간 더위에 노출되면 몸이 점차 적응하면서 덜 힘들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무리한 열 노출이 오히려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더운 국을 먹거나 찜질방에 다녀온 후 시원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상대적 체감 효과 때문이다. 실제 중심체온(core body temperature)은 상승했음에도, 땀 배출 후 바람이나 에어컨을 맞으면 시원하게 느껴질 뿐이다. 즉, “땀 흘리면 시원하다”는 것은 착시 효과일 수 있으며, 몸 내부는 오히려 더 과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 기온이 35도 이상이고 습도가 높다면, 땀은 증발하지 못하고 피부에 머문다. 이로 인해 열이 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축적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뜨거운 음식 섭취, 사우나 등은 체온을 더 높이며 열사병, 탈수, 어지러움 등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정리하면, 이열치열은 다음의 경우에만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조건설명결과
[가능] 낮은 습도 + 짧은 열 자극 / 땀 증발 가능 / 일시적 시원함 유도 가능
[가능] 열 순응을 위한 계획된 노출 / 운동선수나 군인 훈련 / 적응력 증가 효과 있음
[불가] 폭염, 고습 환경 / 땀 증발 어려움, 열 축적 / 위험성 급격히 증가
즉, 이열치열은 ‘무조건적인 건강 요법’이 아닌, 조건부 전략이다. 특히 더위에 민감한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는 이 전략을 피해야 하며, 반드시 충분한 수분 섭취와 열 차단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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