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기에 모인 물로 하면 안되는 것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른 여름철, 제습기는 단순한 가전제품 그 이상이다. 눅눅한 실내 공기를 뽀송하게 바꾸고, 곰팡이 냄새를 잡아주는 생활 필수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제습기에서 모이는 물—흔히 '응축수'라 불리는 액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겉보기에는 맑고 깨끗하다. 정수기 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물이, 사실은 결코 마셔서는 안 되는 **‘비위생적 폐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습기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공기 중의 수분을 차가운 열교환기에서 응축시켜 물방울로 만들고, 이를 수조에 모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던 미세먼지, 박테리아, 곰팡이 포자, 그리고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역시 함께 포집된다는 점은 간과되기 쉽다.
응축수는 정수된 물이 아니라, 공기 중 오염물질이 고스란히 스며든 채 만들어진 물인 것이다. 이는 단지 물 한 컵의 문제가 아니다. 오염된 수분이 축적된 공간은 세균의 온상이 될 수 있으며, 장시간 방치될 경우 레지오넬라균 같은 위험 병원균이 증식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환경위생 연구기관에서 분석한 제습기 응축수 샘플에서는 다수의 총대장균군(coliform bacteria), 비병원성 곰팡이균, 심지어 특정 환경에선 레지오넬라균까지 검출된 사례가 보고됐다. WHO나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제시하는 식수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일부 소비자들은 “어차피 공기에서 나온 물이니 마셔도 되지 않겠냐”며 무지에 기반한 사용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건강 리스크다.
그렇다면 이 물은 모두 버려야 할까? 아니다. 용도만 올바르게 구분하면 제습기 응축수는 생활의 다른 영역에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청소용 물: 걸레질, 욕실 바닥 청소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단, 2~3일 이상 된 물은 세균 증식 우려가 있으니 즉시 사용
변기 물 재활용: 화장실 변기 물통에 붓는 방식으로 물 사용량 절감 가능.
세차용 물: 먼지 제거 등 1차 세척에는 유용하지만, 최종 헹굼에는 적합하지 않다.
화분 물 주기: 추천하지 않는다. 흡수하는 식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오염물질이 포함될 가능성 있음.
다리미 물: 석회질은 적지만 세균으로 인해 다리미 내부 오염 가능성이 높아 비권장.
“깨끗해 보여도 깨끗하지 않다.”
제습기 응축수는 바로 그 전형이다. 가전제품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올바른 정보, 정확한 판단, 그리고 실용적 활용이 곧 스마트한 소비자의 조건이다. 마치 쓰레기를 재활용하듯, ‘응축수’도 현명하게 써야 하는 자원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