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을 읽고
올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일이었던 이사를 준비하고 끝내느라 약 2달간 책 리뷰를 쉬었다.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메모를 모아 글로 써내기에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이사를 준비하기 시작할 즈음 <큐레이션>을 다시 한번 집어 들었다. 벌써 세 번째로 표지를 넘기는 책이었다.
이 책은 예전 회사에서 추천 서비스를 담당할 때 구매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추천 서비스에 대해 내부에서 발표나 강의를 진행할 일이 때때로 있었는데, 그 본질을 큐레이션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참고했다. 그런데 유독 중간 이후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두 차례 정도 다시 시작해서 중간까지 읽기를 반복했고, 그게 책 옆면에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았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이사하면서 서재에는 '선택된' 책들만 남겨둘 예정이었기 때문에 읽고 내 것으로 소화한 뒤엔 다른 이에게 책을 넘길 예정으로 마음먹었다.
이 책은 추천 서비스나 큐레이션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그래서 뻔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제 광고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 광고가 아니라 정보가 사용자들의 시선을 유혹하기 위해 지면을 채운다. 사용자에게 유익한 '브랜디드 콘텐츠'다. 실제로 이제 대부분의 광고는 TV나 인쇄매체, 옥외가 아니라 5인치 남짓한 모바일 디바이스에 노출되는데, 이 지면에서 전통적인 광고 같은 콘셉트로는 시선을 끌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브랜드는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콘텐츠를 보여줘야 한다.
콘텐츠는 3가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 모바일 지면을 이용하는 콘텐츠는 2번을 중심으로 1번과 3번 요소를 최적화할 수 있다. 같은 브랜드지만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따라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말할지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브랜드의 멀티 페르소나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
1. 무엇을 담을 것인가
2.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3. 어떻게 말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단계에서 공감이 갔던 저자의 말은 '기술은 오히려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감성이 없는 기술'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기술은 이제 일상에서 너무 흔하지만 거기에 기반을 둔 서비스나 브랜드가 나의 것이 되려면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술로 접근하면 사용자는 그 기술의 '필요성'을 고민하게 된다. 필요성을 고민하게 되면 그 존재가치를 부정하기 쉽다. 이성적인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 예시로 웨어러블 기기를 든다.
브랜드는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변해야 한다. 미쉐린 가이드처럼 '당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나도 관심이 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고객의 맥락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맥락을 따라가는 것이다. 과녁이 계속 움직인다면 과녁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목표를 맞출 수 있다.
박물관에서 나온 큐레이션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사실 큐레이션이 박물관을 나온 지 이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론이고 요즘 '소비자'의 주류를 차지하는 MZ세대에 큐레이션은 이제 박물관보다는 일상에서 먼저 접하게 되는 게 아닐까.
책에서는 큐레이션과 큐레이터에 대해 '편집으로 새로운 가치를 주는 것', '대량의 무가치에서 필터로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말한다. 정보나 상품이 무한대가 되면서 이제 잡음 속에서 신호를 찾는 건 필수다. 검색으로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의 IT 공룡들은 검색으로 시작한 케이스가 많았지만 이제 검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나의 욕구를 어떤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제 잡음 속에서 신호를 발견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나는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지와 정보를 잡음에 비교한 부분을 읽으며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떠올랐다. 내가 추천 서비스를 담당할 때 생각한 방향도 어쩌면 노이즈 캔슬링에 가까웠다. 볼 필요 없는 것들, 듣고 싶지 않은 잡음을 지워주는 것. 다른 브랜드나 정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잡음 차단기. 나를 잘 이해하고 내 맥락을 이해해서 필요한 것들만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큐레이션'은 자유를 준다. 정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방대해진 정보의 바다 (이것조차 구식 표현이지만)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게 됐다.
구매를 하려다가도 끝없이 나오는 검색 결과에 구매 자체를 포기하는 나 자신, 그리고 그런 사용자의 행동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다 보면 이 생각에 확신이 든다. 추천 서비스나 큐레이션은 필터링을 통해 선택지를 좁히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이 나를 해방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잘 만들어졌을 때 얘기다.
큐레이션이 갖는 다양한 얼굴 가운데 세분화는 앞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구가 된다. 기존에 사용자들을 구분하던 기준으로는 이제 부족하다. 의미 있는 큐레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스포츠팬은 자신을 스포츠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팬도 아니고, 뉴욕 양키즈의 팬이라고 인지한다.
이 부분에서 내가 네이버 앱을 쓰며 느꼈던 불편함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지금은 SSG 랜더스가 된 SK 와이번스의 팬이다. 저자가 쓴 것처럼 나는 스스로 스포츠팬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야구팬이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축구팬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스포츠 탭에 진입하면 자꾸 축구나 다른 구단의 뉴스가 가장 위에 뜬다. 인기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이라고 해도 내 팀의 경기가 아니면 내게는 볼 이유가 없다. MY팀을 설정해두었지만 부분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다. 이 일련의 경험은 스포츠를 굳이 내 홈 화면에 구성할 이유를 내게는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 결과를 보기 위해 꽤 많은 터치가 필요하다. 이런 정보 큐레이션의 영역은 충분한 매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공들이지 않았을 수 있지만, 쇼핑에서 만나는 좋은 추천 영역의 경험을 떠올리면 여전히 크게 아쉽다.
앞서 큐레이션과 추천 서비스의 역할을 노이즈 캔슬링에 비유했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제거한 잡음이 모두 의미 없는 잡음이 맞을까? 내게 정말 잘 맞는 상품이나 필요한 정보가 '잡음'으로 치부되어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추천 서비스를 말할 때 늘 함께 언급되는 문제 중 하나가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다. 필터 버블은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된 인터넷 정보로 인해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말한다. 기술용어지만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말이기도 하다. 알고리즘이 사용자들에게 일부 콘텐츠나 정보를 집중적으로 노출하고, 거기 반응한 데이터로 알고리즘이 강화되면서 이는 점점 반복된다. 과연 잡음을 제거한 큐레이션이나 추천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책에서는 반대로 잡음을 증폭시키는 서비스로 트위터를 예로 든다. 트위터의 RT(리트윗)는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게 되면서 노이즈를 일으키는데, 이 양에 따라 처음엔 작은 잡음에 불과했더라도 얼마나 유용하고 많은 공감을 얻은 의견이나 정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제품의 목표에 따라 잡음은 순수하게 제거할 대상이 되기도 하고, 더 증폭시켜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찾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탑재된 노이즈 캔슬링 기능도 큰 장점이 있는 반면, 선택적으로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해지기도 했다. 큐레이션의 노이즈 캔슬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보 과잉 시대에 대한 기술적 대처로 제거된 잡음이 정말 불필요한 잡음인지, 의미 있는 작은 소리 (小音)인지는 우리가 판단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