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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an 02. 2022

자연에 덜 미안한 식사

<오늘 조금 더 비건>을 읽고


    나는 매년 두 가지 종류의 목록을 작성한다. 하나는 그 해에 이루고 싶은 결과나 시도에 대한 목표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해에 만들고 싶은 습관이다. 작년에 만들고 싶었던 습관 목록 중 하나는 '일주일에 1번은 채식하기'였다. 재택근무가 이어지던 상황이었고,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21년 습관 목록들은 모두 누군가에게는 '겨우?'라고 느껴질 것들이었다. 습관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쉽고 작은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데, 그 작은 성공들 덕분에 1년 내내 유지하는 것도 예전의 거창한 목표보다 쉬웠다.)


    단, 다른 습관과 달리 생각보다 노력과 고민이 필요했던 게 바로 채식이었다. 원래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편이라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채식의 종류를 비건(Vegan)으로 정한 탓이었다. 채식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부분적 채식을 해보려는 것이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어서 동물성 재료의 섭취를 완전히 제한하는 비건(Vegan)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어류와 유제품, 달걀까지 제외하고 나면, 떠오르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배달 음식 중에서 찾아보고자 하면 더욱 어려워졌다. 간혹 샐러드 전문점조차 비건을 위한 샐러드 메뉴는 따로 갖춰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부분적 채식의 시작


    다행히 2021년은 재택근무를 하느라 직접 식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했다. 다만 평소 익숙했던 음식에서 수없이 많은 재료를 빼고 만든 한 끼를 온전히 즐기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일반식에 익숙한 내 입맛에는 '무언가 빠진' 느낌의 식사였다. 매주 한 번은 비건 밥상을 준비했지만 단지 미션을 위한 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두부를 기름 없이 굽거나 향신채를 잘 볶아 식감과 향을 살리는 조리법을 활용하며 점차 손에 꼽을 만큼 맛있는 메뉴들도 즐길 수 있었다. 식감이 좋은 채소를 사용하면 동물성 재료 없이도 괜찮은 한 끼를 준비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대체육을 이용하거나 채식 만두 같은 비건용 가공식품을 사용하기도 했다. 비건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락토(Lacto- vegetarian: 유제품 섭취 가능)나 오보(Ovo-vegetarian: 달걀 섭취 가능) 베지테리언 기준의 식사는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도 즐겼다. 


    올해도 꾸준히, 조금 더 빈도를 높여서 계속 유지하고 싶은 습관이었지만 고민도 있었다. 식사 메뉴를 온전히 홀로 결정했던 작년 많은 기간과 달리, 올해는 한동안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탁에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기도 하고, 아예 고기를 사용하는 메뉴도 많다. 혼자 식사하게 되는 상황에는 주로 동물성 재료를 배제하려고 하지만, 연속적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게 아닐 때는 조금 더 어려웠다. 





간단한 비건 레시피, <오늘 조금 더 비건>


    올해 습관 목록에 채식을 넣을지 말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오늘 조금 더 비건>. 리디북스 셀렉트에 올라와서 둘러보던 차에, 저자를 소개하는 한 문장이 인상 깊었다. 

자연에 덜 빚지는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기 위해 부분적 채식을 고민했던 것이라,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충분한 이유가 됐다. 네 컷 만화 형태로 레시피를 다룬 것이기 때문에 독서한다는 느낌보다는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금세 읽었다. 책의 초반에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된 채식의 종류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해보게 했던 페이지다. 락토나 오보, 락토 오보 외에도 어류까지는 섭취하는 페스코나, 거기에 가금류까지 섭취하는 폴로 베지테리언의 존재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꿀도 채식의 종류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도 신기했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내가 원하는 채식의 종류도 달라질 것 같았다. 육식에 대한 반대일 때와, 환경에 초점을 맞출 때 선택할 수 있는 식탁은 분명 다르다. 

    

    사실 이 책을 마지막 장까지 보고 가장 기억 남는 것 중 하나는 도입부에 있던 채식의 종류다. 물론 소개한 다양한 레시피도 인상 깊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됐다. 꼭 비건의 식사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분명 내 주방에서 도움이 될 정보들이었다. 다만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고, 미루고 있던 나의 '부분적 채식'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다루게 만든 건 바로 그 한 페이지다. 





채소라면 자연에 덜 미안한


    부분적으로나마 채식을 시도해보면서 고민이 됐던 재료들이 있었다. 푸드 마일리지가 높거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재료들이다. 푸드 마일리지는 먹을거리가 산지에서부터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뜻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사 먹는 바나나나 레몬은 국내산 식재료에 비해 이동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길다. 해외여행 역시 탄소발자국이 엄청나다고 지적받는데, 식생활에서 소비하는 식료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국내산'은 그 맛과 품질의 차이를 떠나 그 거리로도 자연에 조금은 더 나은 일이 아닐까. 특히 비건 관련 콘텐츠 중에서도 푸드 마일리지에 대한 우려의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비욘드 미트'로 대표되는 대체육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등장한 로컬 푸드 운동도 자연에 덜 미안한 식사를 위한 방법일 것이다.

    푸드 마일리지를 떠나서 식물성 재료 중에도 이를 수확하기 위한 과정 자체로 환경에 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가장 찝찝하게 생각하는 재료는 바로 아보카도다. 이미 많이 기사화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아보카도는 1알을 수확하기까지 320L의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이걸 알고도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간 과카몰리를 내 채식 식단에 포함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이런 일련의 고민들을 안고, 올해의 습관 목록에 채식을 넣을지 말지 망설이던 차에 이 책을 보고 마음이 기울었다. 아주 때때로 까다로운 기준의 식사를 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물론 부분적이 아닌 완전한 채식 선언을 하는 것이, 푸드 마일리지가 높은 재료나 아보카도를 식탁에서 퇴출하는 것이 자연에는 더 좋겠지만 내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그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자신이 없다. 환경을 위해 내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고 선언하기는 어렵다. 그 마음과 다짐 그대로 꾸준히 실천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고 그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보려고 한다. 아보카도가 필요한 과카몰리 대신 색다르게 만든 토마토 살사 딥을 곁들이고, 지구 반대편을 돌아서 온 재료 대신 주위에서 대체재를 찾아보는 일. 식탁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얻을 수 있도록 나의 작은 텃밭을 더 열심히 가꿔보는 일. 이런 아주 조금의 변화를 주위에도 알려보는 일. 작지만 그 작은 일들 덕분에 오늘 조금 더, 가까워진다. 자연에 덜 미안한 식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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