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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로더의 140억 달러 리셋

AI, 브랜드 위기, 그리고 여행 소매의 퇴각

by 마케터의 비밀노트

글로벌 뷰티 시장의 거인 에스티로더(Estée Lauder)가 지난 3년간 이어진 매출 하락을 끊어내기 위해 본격적인 리셋 버튼을 눌렀다. 그들의 해법은 단순하지 않다. AI 도입, 디지털 확장, 브랜드 포트폴리오 재편, 그리고 제품 혁신이 동시에 작동하는 대규모 변혁이다.

2025 회계연도 실적 발표에서 에스티로더는 매출 143억 달러(전년 대비 –8%)를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동시에 회사는 외부 자문사를 고용해 포트폴리오 검토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일부 브랜드 매각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이 거대한 변화를 이끄는 이름은 2024년 CEO로 취임한 스테판 드 라 파베리(Stéphane de La Faveri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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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auty Reimagined”: 에스티로더 최대의 조직 개편

드 라 파베리는 2024년 5월, “Beauty Reimagined”라는 변혁 계획을 내놓았다. 핵심은 글로벌 브랜드 중심 모델을 깨고 지역 단위 책임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 기존 7개 지역을 4개로 압축하고, 지역별로 P&L 권한을 부여하며 속도와 책임을 강화했다.

그는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직원 모두가 변화를 체감하며,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구조 개편이 아니라,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빠른 실행력”과 “지역 맞춤 전략”을 통한 생존 방정식으로 읽힌다.


2. AI와 디지털 전환: 뒤에서 빛을 발하다

AI는 단순히 소비자-facing 툴에 국한되지 않는다. 에스티로더는 북미 미디어 캠페인 ROI를 31% 개선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AI 기반 광고 최적화 덕분이다.

이커머스 매출 비중: 31% (사상 최대치, 전년 대비 +3%)

Amazon 입점 브랜드 수: 3개 → 11개 (1년 새 3배 이상 확대)

TikTok Shop·Shopee 진출: 동남아시아까지 디지털 영토 확장

특히 더 오디너리(The Ordinary)는 AI 기반 티몰(Tmall) 플래그십 스토어를 론칭하며 디지털 실험의 선봉에 섰다. 이 브랜드는 고도화된 온라인 경험과 합리적 가격대로 글로벌 Z세대를 끌어들이며, 그룹 내 핵심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다.


3. 흔들리는 브랜드들: Too Faced·Dr.Jart+·Tom Ford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에스티로더의 ‘스타 브랜드’들이 흔들리고 있다.

Too Faced: 5,000만 달러 손상 차손 인식

Dr.Jart+ (닥터자르트): 중국·한국 부진으로 3억 7,500만 달러 손실

Tom Ford Beauty: 향수 성장 둔화로 5억 4,900만 달러 손상

이 브랜드들이 단순히 재포지셔닝에 그칠지, 아니면 포트폴리오에서 제외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의 신호탄임은 분명하다.


4. 여행 소매의 퇴각: ‘효자 채널’의 몰락

한때 매출의 30%를 차지했던 여행 소매(Travel Retail)는 팬데믹 이후 급격히 식었다. 2025 회계연도에는 28% 감소하며 매출 비중이 15%까지 추락했다.

드 라 파베리는 “아시아 여행 소매 재고는 건전한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말했지만, 이 채널의 전략적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뷰티 산업에서 ‘공항 듀티프리 숍’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5. 제품 혁신: 다시, 소비자에게 답을 구하다

회사의 또 다른 돌파구는 제품 혁신이다. 2026년에는 전체 신제품의 16%를 1년 내 출시, 장기적으로는 이를 3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주요 신제품:

Clinique: SPF 기능이 추가된 DDML 모이스처라이저

MAC: Lipglass Air

La Mer: Balancing Treatment Lotion

특히 Clinique는 “Almost Lipstick” 바이럴 성공을 기반으로 북미와 아시아 전역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조용한 히어로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6. 재무와 전망: 투자자들의 불안, 그러나 내부의 자신감

에스티로더는 PRGP(Profit Recovery and Growth Plan)을 통해 74%의 매출총이익률을 달성했다(전년 대비 +230bp). 하지만 그 성과를 단순히 마진에 묻지 않고, 다시 소비자 혁신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 가이던스는 기대에 못 미친다.

매출 성장률: 0~3%

조정 EPS: $1.90~$2.10 (시장 예상 $2.20 하회)

관세 관련 비용: 1억 달러 부담 예상

이 전망은 투자자들에게 불안을 남겼지만, 경영진은 중국·일본·미국에서의 점유율 반등을 근거로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7. 브런치 독자를 위한 인사이트

에스티로더의 리셋은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뷰티 산업 전반이 맞닥뜨린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AI 기반 마케팅 최적화: 소비자 경험뿐 아니라 백엔드 효율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플랫폼 다각화: 아마존·틱톡 같은 커머스 플랫폼은 더 이상 ‘보조 채널’이 아니라 글로벌 성장의 메인 무대다.

브랜드 정리와 집중: 모든 브랜드를 살릴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여행 소매의 쇠락: 뷰티 산업의 판도가 ‘오프라인 럭셔리 채널’에서 ‘디지털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에스티로더는 지금 “14억 달러짜리 리셋”을 단행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숫자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AI, 디지털, 혁신이라는 카드를 통해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 중이다.

브랜드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중요한 것은 빠른 실행력과 과감한 선택이다. 에스티로더의 이번 리셋이 글로벌 뷰티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실패 사례가 될지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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