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의 리셋
3분기 실적 발표에서 LVMH의 CFO 세실 카바니스(Cécile Cabani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매장에 들어올 때만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혁신, 리테일 전략, 퍼포먼스 개선 등도 마찬가지로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이는 LVMH가 더 이상 ‘디자이너 중심의 브랜드 리뉴얼’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이다. 실제로 올해 LVMH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를 펜디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임명했지만, 카바니스가 강조한 건 디자인보다 ‘매장 내 혁신과 경험 설계’였다.
펜디 CEO 라몬 로스(Ramon Ros)는 치우리의 임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은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문화를 큐레이션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말은 LVMH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루이비통, 디올, 티파니, 셀린 등 그룹 내 주요 하우스들이 단순히 제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경험’을 중심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카바니스는 “LVMH의 셀프 헬프 전략은 크리에이티브 리뉴얼뿐 아니라 리테일 혁신에서도 시작된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은 상하이에 ‘Le Voyage Louis Vuitton’을 오픈하며 문화와 리테일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간을 선보였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전시를 관람하며, 제품을 경험한다. “스토리텔링, 흥분, 생산성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한다”는 게 LVMH의 설명이다.
또한 루이비통은 55가지 셰이드로 구성된 립스틱 캡슐 ‘La Beauté Vuitton’을 런칭하며 패션과 뷰티를 연결하는 새로운 트래픽 허브를 만들었다. 디올은 뉴욕과 베벌리힐스에 ‘The House of Dior’를 오픈하고, 남녀 컬렉션의 리뉴얼과 함께 ‘Lady Dior’ 캠페인을 새롭게 전개했다.
이러한 모든 시도가 단순한 매장 확장이 아닌, ‘브랜드 경험을 통한 자가 성장(Self-Help)’의 일환이다. 즉, LVMH는 크리에이티브 리더 교체 이전에 이미 매장 내에서 브랜드의 흥분과 욕망을 재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티파니의 경우도 리테일 혁신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 긴자와 밀라노 플래그십의 리뉴얼 후 매출이 급상승하며, 하이 주얼리 부문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재 전체 매장의 약 30%가 리뉴얼을 완료했으며, 신규 매장은 레거시 매장 대비 월등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금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티파니는 ‘디자인 중심의 가격 전략’으로 마진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제품의 가치’를 디자인으로 환산하는 LVMH 특유의 프리미엄 구조를 잘 보여준다.
지역별로는 중국 본토 매출이 중고 한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고, 미국 시장도 점진적 회복세를 보였다. 유럽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카바니스가 “성장의 질은 현지 고객(Local Clients)에 달려 있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이는 ‘관광객 중심 매출’에서 ‘로컬 커뮤니티 중심 매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장기적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략의 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이 매장에 반영될 예정이다. 펜디의 치우리, 디올의 조너선 앤더슨, 셀린의 마이클 라이더 등 새 디렉터들이 선보일 컬렉션은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바니스는 결론을 이렇게 맺었다.
“우리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흥분(Excitement)에 투자하고, 리테일 경험에 투자하며, 브랜드의 힘에 투자하는 것. 그게 성장의 시작점입니다.”
LVMH의 이번 리셋은 ‘크리에이티브의 교체’보다 ‘리테일 경험의 진화’가 브랜드 회복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럭셔리 시장의 미래는 더 이상 ‘누가 디자인하느냐’가 아니라, ‘브랜드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경험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Louis Vuitton의 ‘Le Voyage’, Tiffany의 리뉴얼 스토어, Dior의 하우스 전략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 럭셔리는 이제 공간에서 시작되고, 경험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