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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브리프에서 무너진다

잘 만든 브리프 하나가 14개의 팀을 움직인다

브랜드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일관된 메시지’, ‘탁월한 크리에이티브’, ‘민첩한 실행’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의 시작이자 실체는 ‘브리프(brief)’라는 문서 한 장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곤 하죠. 그렇습니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는 브리프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마케터가 쓰는 브리프는, 사실 브리프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브리프는, ‘그냥 자료’다

슬라이드 수십 장. 목표, 타깃, KPI, 벤치마킹, 채널 전략, 심지어 솔루션까지 이미 다 정해져 있죠. 하지만 이건 정보의 나열일 뿐, 전략의 방향성도, 팀 간의 연결도, 진짜 문제 정의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브리프는 팀을 하나로 움직이게 하나요? 아니면 각자 다르게 해석하게 하나요? 좋은 브리프는 의도를 정리하고, 실행을 예측 가능하게 만듭니다.


마케터가 꼭 기억해야 할 ‘진짜 브리프’의 조건

1. 누구나 읽고 “아, 이거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입도,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읽고 10초 안에 이해할 수 없다면 브리프가 아닙니다.

2. 데이터는 인풋, 인사이트는 아웃풋

단순히 “2030 여성이 주요 타깃”이 아니라, “BUT 그들의 구매 결정 과정에서 정보 피로도가 높다 → THEREFORE 우리는 단순하고 감성적인 콘텐츠로 대응할 것이다” 이런 식의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3. ‘틀릴 수 있는 가설’이 있어야 한다

브리프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선언해야 그에 맞는 실행과 평가가 가능하죠.

4. ‘성공’의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이 캠페인의 성공이 무엇인지 모든 팀이 똑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인가요? 매출 기여인가요? 고객 행동 변화인가요?

5. Word 문서 3장 이내로 끝나야 한다

슬라이드 30장이 아닌, 단순하고 명료한 텍스트 중심의 문서가 되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형식보다 중요한 건 메시지 그 자체입니다.


브리프는 전략 문서이자 심리적 계약서

좋은 브리프는 마케팅 전략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조직 간 신뢰를 형성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팀이 보는 방향과,

콘텐츠 팀이 만들 것과,

광고팀이 집행할 대상과,

개발팀이 구현할 기능이 모두 일관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첫 단추가 바로 브리프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브리프는 더 중요해진다

브리프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팀 정렬 때문만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커질수록,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브리프는 곧 운영 체계(OS)가 됩니다.

시차가 다른 6개 팀, 엔지니어, 법무, 현지화, 광고 파트너까지 연결해야 한다면 한 번의 회의, 한 장의 이메일로는 절대 정렬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브리프는 이렇게 작동해야 합니다:

Durable: 10,000명의 구성원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Translatable: 다양한 국가와 언어, 문화에서도 통하는 내용이며

Anchored: 캠페인의 중심 가치와 목표를 잃지 않도록 고정하는 중심축


브리프가 잘못되면 생기는 일

브리프 하나가 명확하지 않으면, 아래의 일이 벌어집니다:

팀원들은 회의만 수십 번, 피드백만 수십 건 반복하며 시간과 예산을 낭비합니다.

실행은 시작했지만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마케팅 캠페인은 시작되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퍼포먼스가 나옵니다.

→ 결과적으로 수천만 원이 증발하고, 브랜드 신뢰는 떨어지며, 조직 간 갈등만 남습니다.


정리하며: 브리프는 브랜드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늘 ‘무엇을 만들까’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왜 만들지?”, “누구를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캠페인, 훌륭한 영상, 트렌디한 콘텐츠도 목표 없는 배회에 불과합니다.

브리프는 방향이고, 약속이며, 설계도입니다. 잘 만든 브리프 하나는 단지 문서가 아닌, 수십 명의 팀을 움직이는 전략적 무기가 됩니다.


브리프를 다시 쓰는 마케터에게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슬라이드부터 만들지 마세요. 그 대신 Word 문서를 열고, 다음의 문장을 써보세요:

“지금 우리는 X를 겪고 있다. BUT, 문제가 Y에서 생기고 있다. THEREFORE, 우리는 Z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 문장이 명확하다면, 당신은 이미 브랜드를 하나로 움직일 준비가 된 마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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