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차도

김시헌 신작 시.

by 김시헌



한때는 나 조차도

당신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당신은 심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나의 피를 온통 끌어가고 있었고

폐 속으로 숨을 가득 불어넣어

당신의 향기가 나를 채우도록 만들었다.

어느 순간 나의 혀는

배운 적이 없는 당신의 언어로 말하고

푸른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게 우주를 보여주던 푸른 눈은

그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때는 나 조차도

나의 행복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심장에 박혀 사랑을 고백하던 그대는

수많은 약속을 남기고 어디로 떠났는가

한때는 그 누구도

당신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믿었는데

어떻게 시간의 마음을 돌려놓았는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무 일도 아닌 척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없다네.




유튜브에 방문하시면 시낭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4asAihv33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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