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서른 즈음, 여름이 훌쩍 다가오고 있던 시기의 이른 아침. 일행 세 분이 먼저 타고 계시던 택시에 합승했을 때였다.
○○대 ○대를 졸업한 ○○ 아드님을 두셨다는 기사분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셨고, 모두를 눌러 버리겠다는 기세로 아들 자랑 1절을 이미 늘어놓으신 듯했다. 내가 탄 후에도 연이어 그 2절과 본인의 젊은 시절 무용담이 이어졌다. 뒷좌석은 이내 조용해졌고, 조수석에 앉았던 나는 직업병대로 흠흠 하면서 이따금 감탄사를 추임새처럼 넣거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2절도 얼추 끝나자 요리를 완성하듯 고명을 얹으셨다.
“그래도 사람은 역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 해요. 허허."
“동감입니다. 하하.”
“나는 그래도 젊을 때부터 자식 일이나 집안일은 나 몰라라 내팽개쳐 둔 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서 괜찮은데, 그저 아내한테 미안하고 고맙지. 무심하게 살아서.” 심하게 무심하셨더구먼요.
“지금이라도 잘해 주시면 되죠.”
“…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요, 안 바뀌지ㅎ” 설마 그것도 자랑은 아니시겠죠...;;
“하핫- 요즘 같으면 싸모님 벌-써 도망가셨습니다~^^” 평생 그리 사시는 거야 본인 자유고 또 저마다의 사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사모님은 뭔 죕니까... 구시대에 태어나신 죄?
“... 아가씨는 나이가 몇이에요?”
“... 서른이요.” 스물아홉이나 서른하나였던가? 가물- 만 나이로는 스물일곱, 여덟쯤이었을 수 있다 생각하면 숫자란 게 새삼 요망하게도 느껴진다. 아니, 거기에 휘둘리고 마는 인간이 역시 우매한 거겠지.
“아이쿠 시집가야겠네.” 화살을 내게 돌리고 싶으셨던 듯.
“생각 없는데요.”
“부모님이 걱정 안 해요?”
“네.” 걱정하신들 제가 제 인생 생각하는 것만큼 되겠습니까.
“나이 찬 자식 데리고 있으면 부모들이 걱정하기 마련이에요.”
“축의금 걱정은 되시는 모양이에요. 뿌린 대로 못 거둘까 봐. - -; 제 행복보다 남들 이목이나 돈 생각부터 하는 걸 보니 그게 또 기분 나빠서 더 하기 싫더라고요.”
“에-이, 축의금 그거 얼마나 남는다고 그러겠어요.”
“어차피 제 손에 들어올 돈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가는 게 좋지.” ...대충 얼버무리고 창 밖을 응시할까 했는데, 아저씨의 말투가 내 장난기에 발동을 걸어 버렸다. 말씀을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더 늦고 빠르고는 누가 정하는데요?” ‘더’라니, 이미 늦었다는 뜻?
“사람은 ‘때’라는 게 있어요.”
“제 말이요.”
“…?”
“때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마흔에든 쉰에든 내일이든 모레든 할 팔자면 할 거고, 평생 안 해도 그냥 그 때가 없나 보다 하면 되죠.”
“에잉... 아가씨가 아직 어리구먼. 원래 사람은 낮에 잘~ 지내다가도 밤이 되면 외롭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다들 결혼을 하는 거지.”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도 많잖아요? 그리고 밤에 외로워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야죠- 저는 취미 생활만으로도 수면 부족인데.” 어머, 외로운 데 낮밤이 왜 따로 있어야 하나요?*_*?라고 순진한 척 농하려다 말았다.
“에헤이- 취미 생활... 그게 아니야. 그건 아직 세상의 순리를 잘 몰라서 그래요. 좀 더 살아봐.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읎-어요.”
“... 아까는 하고픈 대로 하며 살라면서요?”
“……(!)” 사모님껜 말로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 되는 게 세상의 순리인 줄 아셨던 듯. 내로남불이거나.
때 맞춰 딱 그때 택시는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모두 크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내렸다. 참고로, 뒷좌석 멤버는 모두 남자분들이셨다. 기사님으로서는 은근히 짓궂고 싶으셨던 건지도... 어쨌든 남녀노소 기타 구분 이전에 우린 모두 그냥 사람이잖아요?
인구 폭발 중인 지구상엔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여담- 결국 비행기 안에서 얼간이 같은 표정으로 입까지 벌리고 졸았는데, 눈을 뜸과 동시에 옆자리 분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이불 킥의 역사를 갱신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한 번 발 동동.(창피한 나머지 제대로 썩은 표정을 지었던 것, 죄송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