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살았던 고단한 숙려기간

트라우마성 자율신경실조증과 공황장애 차이

by 사라

그가 나만 사랑한다고 믿었을 때의 나는 그가 가장 힘들어하던 시절 그의 곁에 있었었다. 판도라 상자를 열고도 뒤돌아서지 않았고, 그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선택을 했다. 혹시라도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아무 노력 없이 끝내면 미련이 남을까 봐, 후회 없는 선택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가진 그를 고쳐주고 싶었다. 단지 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때의 나는 그가 방황 끝에 스스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숙려기간 내에 그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나와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와서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남편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외박을 금지당하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듯 보였다. 내 잘못된 기대의 끝에서 마주한 결론은 이혼이었다.


하지만 '이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라는 말은 결국 사실이었다. 그 시간을 통과한 뒤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긴 세월을 함께하고도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겠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이 생각은 조금씩 내 감정의 결을 바꾸어 놓았다. 긴 세월을 오래 버티며 이해하던 나는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한 발 물러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랜기간 내 스스로 방치했던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고된 숙려기간 끝에 내가 붙잡는 인연은 결국 붙잡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다. 사랑은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나쁜 생각들이 뿌리깊게 박혔다.


그는 이혼을 눈앞에 두고서야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긴 세월 함께했지만 그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낯선 모습 앞에서 기함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혼을 망설일 이유를 지울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은 예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에게는 내가 잠시 필요했을 순간에 내려진 결정이었기에 그 역시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 단 한 번의 실수는 그가 이혼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되었고, 그 이후 그는 나를 철저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오해를 풀고자 건네는 대화를 끝까지 외면했다. 그렇게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철저히 거부당했다. 나와의 대화를 수락하면 그는 자신의 밑낱을 마주해야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그의 이혼 결심은 확고했다. 마치 이 기회를 붙잡아 다시 자유를 되찾겠다는듯이 그의 태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외박은 다시 시작되며 일탈은 반복되었고, 그의 눈빛은 점점 이전과 달라졌다. 무언가에 과도하게 취한 사람처럼 어둡고 탁한 기운이 스며들어 갔다. 가끔 아이들 때문에 나누는 대화에서도 말의 요점은 자주 빗나갔고,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그는 거절로 응답했다. 서로의 끝을 마주보며 그가 보인 행동들로 인해 그에게 내 존재는 버려지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늘 말했었다. '함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느냐'고.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마지막 순간마저도 가족이 아닌 타인을 선택했기에 그의 말은 모순적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성공을 눈 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나와 아이들을 버리는 선택을 했고, 그가 등을 돌리는 태도 속에서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 시절의 나는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있었지만, 내 힘듦을 외면한 그를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끝에서 나는 관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스토커처럼 취급받는 위치에 서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 노력한 모든 것들은 허망하게 무너진 기분이었다. 내가 그에게 당연히 해주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줄어갔다. 그럼에도 그의 한마디에 나는 여전히 그를 위한 일들을 해주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냉담함은 점점 더 짙어져만 갔다. 그제야 비로소 현실을 마주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내가 그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그에게 신뢰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는 혹시나 그가 나를 붙잡아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끝내 놓지 못했었다. 밤낮으로 눈물을 흘렸고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메말라갔다. 겨우 붙잡고 있던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건강만은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이들을 혼자 책임져야 했기에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마음은 수없이 벼랑 끝을 서성였지만 끝내 그 선을 넘지 못했던 이유는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내 아이들을 저런 아버지의 그늘 속에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내 모성애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고, 아이들에게까지 상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숙려기간 동안 아이들은 다시 아빠의 외박에 익숙해져 갔다. 아이들 앞에서 크게 다툰 적은 거의 없었기에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아이들은 밝은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이들 역시 버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마음이 건강하다는 거였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를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가족은 전부였고, 붙잡지 않으면 나도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이상 숨기지 않는 그의 벗겨진 가면 속을 보면서 연민과 허무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그가 후회하는 속도는 내 기대와 달리 많이 늦을것 같다. 덕분에 숙려기간 내내 반복된 거절에 참고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에 건낸 대화도 거절 당하며 전달된 그의 한마디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느끼고 결국 이혼을 했다.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심장이 24시간 지속해서 아플 수 있다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걸 알았지만 내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끝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만 했다. 만약 정을 떼어내는 일이 이토록 깊고 물리적인 통증으로 남는다는 것을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어쩌면 나는 사랑이 없는 평온을 택한 채 그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내게 정을 뗀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지나고나서야 그래도 이혼한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혼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으니까.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을 미루는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스스로를 위해서도 이혼은 하루라도 빨리 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이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의 미래도 고려했기에 사실 쉽게 결정한건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건 이혼 직후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혼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때 날 버려준 전남편에게 감사할 정도로.


이혼을 겪으며 내 마음은 점점 복잡하고도 미묘해져 갔다. 평생 단 한 번도 달라진 적 없던 MBTI 검사 결과마저, 힘들고 고단했던 숙려기간을 지나며 변해버렸다. 늘 확고하던 S는 어느새 N이 되었고, 단단하다고 믿었던 T는 F와 사이를 오갔다. 그 시절의 나는 멘탈과 함께 삶의 구조 자체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트라우마성 자율신경실조증과 공황장애는 어떻게 다를까? 두근거림, 호흡곤란, 어지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은 이를 공황장애로 생각한다.

실제로 두 질환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증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다르다.

(※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공황장애는 ‘공포 반응’이 중심이다


공황장애는 반복적인 공황 발작을 특징으로 한다.

발작은 갑작스러운 강한 공포와 함께 심계항진, 숨 가쁨,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짧은 시간 안에 최고조에 이른다.

이후에는 '또 이런 발작이 오면 어쩌지'라는 예기불안이 생긴다.

의학적으로 공황장애는 신체 감각을 위협으로 잘못 해석하는 공포 회로가 과활성화된 상태로 설명된다.

그래서 인지행동치료나 노출치료처럼 생각과 해석을 조절하는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2. 트라우마성 자율신경실조증은 ‘신경계 조절 문제’다


트라우마 이후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자율신경계 조절 기능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이 경우 교감신경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다.

그 결과 불안한 생각이 없어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심장 박동, 호흡, 위장 기능, 체온 조절처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신체 반응이 쉽게 흔들린다.

이 상태는 자율신경계 불균형 또는 만성 각성 상태로 설명된다.


3. 증상이 나타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공황장애는 강한 발작이 중심이 되고 발작이 지나가면 비교적 안정되는 시간이 있다.

반면 트라우마성 자율신경실조증은 뚜렷한 발작보다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불편감이 특징이다.

만성 피로, 수면 장애, 두근거림, 멍함 같은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시적인 불안 반응이 아니라 신경계의 기본 조절 리듬이 흔들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4. 약물 반응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공황장애에서는 항불안제나 항우울제가 발작 빈도를 줄이는 데 비교적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트라우마 기반 자율신경 이상에서는 약물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졸림, 무기력 같은 부작용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약물이 신경 흥분을 낮출 수는 있지만 신경계 조절 능력 자체를 회복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5. 회복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


공황장애의 치료 중심은 공포 반응과 인지 해석의 조절이다.

반면 트라우마성 자율신경실조증은 신경계 안정과 생리적 회복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같은 증상처럼 보여도 원인이 다르다면 접근 방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근거림과 불안은 같아 보여도 그 출발점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마음의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신체 반응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자책을 줄일 수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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