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대가는 나르시스트의 탄생

나르시스트가 자율신경실조증에 걸릴 확률이 낮은 이유

by 사라

이혼을 코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마자 바로 이혼을 선택했다면, 그는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반성했을까? 내가 그를 붙잡고 단속하며 헌신했던 시간들이 혹시 그에게는 면죄부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이 모든 건 내 추측이고 상상일 뿐이다.

가면을 쓴 그의 진짜 얼굴이 어떤지, 지금과 다를 게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때 바로 돌아섰어도 결과는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은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지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오랜 시간 그를 겪어오면서 늘 마음 한편에 걸리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가 나에게 흘리듯 던진 말들은 누구에게 들려주어도 분명 가스라이팅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었던 그때의 나는 그의 상황과 회피적인 말들을 들으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숙려기간 내 그의 일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상하다는 감각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덮어두었던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기질적으로 일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탈을 자유롭게 누리는 지금의 삶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이후에야 후회와 반성을 마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될까? 아니면 끝내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될까?


그는 아무래도 내현적 나르시스트로 추측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현적 나르시스트와 달리, 내현적 나르시스트는 그 속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사실 사귀기 전부터 거짓말은 시작되었었다. 그가 거짓말로 날 붙잡지 않았다면 절대 그와 사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그의 거짓말을 알아버린 후에도 그의 손을 놓지 못했었다. 때는 그저 습관적인 사소한 거짓말쯤으로 여겼다. 결혼 후에야 그가 겉과 속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 다름이 결국 나를 향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도 등잔 밑이 어두웠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가 내현적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그를 쉽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걸 여전히 보여주고 있어서 씁쓸할 뿐이다.


그는 가끔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 속 비밀을 알게 된 후에야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가족의 안위보다 한순간의 쾌락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가정을 버리는 선택이 최선이라고 여기는게 그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가 내현적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뒤로, 나는 나르시스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그가 끝내 가면을 모두 내려놓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확신하기가 참 어려웠다. 사실 끝까지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기를 바랐다. 내 아이들이 그의 나쁜 모습을 닮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더 나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는 나에게 최악의 남자로 남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스스로 입증이라도 하듯이 나르시스트라는 수많은 흔적들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그제야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만큼 내현적 나르시스트는 가면 속의 이미지를 철저히 숨긴 채 살아간다. 그래서 알아차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마음을 소모하게 된다.


그는 나에게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공감 능력을 운운하던 그는 부부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긴 세월 동안 점점 발전시키며 기만해왔고, 이혼과 동시에 오직 본인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그가 늘 운운하던 공감 능력은 결국 가짜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혼은 했지만 아이들의 아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그는 아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의무도 외면한채 자신만을 위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르시스트가 자율신경실조증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혼을 결심하며 식음을 전폐한 채 무너져 있던 나와 달리, 그는 지인들과 어울리며 또다시 일탈을 즐기는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율신경실조증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져 나타나는 증상으로 만성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수면 부족, 감정 조절 실패 등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나르시스트의 성향을 보면 그들이 상대적으로 자율신경실조증에 걸릴 확률이 낮은 몇 가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높은 자기관리 능력

나르시스트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고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우선시한다. 그 결과 식사, 수면, 휴식 같은 기본적인 생리적 리듬을 비교적 잘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2. 스트레스 회피 및 외부화

문제 상황이나 감정적 긴장을 내면화하기보다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불필요한 내적 긴장을 줄여 교감신경 과활성화를 예방한다.


3. 자기합리화 능력

나르시스트는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심리적 긴장을 스스로 완화한다. 이는 만성 스트레스가 신체에 누적되는 것을 막아 자율신경계 불균형 위험을 낮춘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스트는 성격 특성상 자기 중심적 관리, 스트레스 외부화, 자기합리화를 통해 자율신경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낮다.


물론 극심한 외부 스트레스나 장기적 신체 질환이 동반되면 자율신경실조증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생활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보호받는 셈이다.


위에서 말한 나르시스트의 기본적인 성향이 충족되는 그였기에 공감 능력이 높다고 스스로 말하던 그는 마음이 아프다는 느낌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심장의 통증을 하찮게 여긴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한다는 것이 나르시즘이 높다는 것은 아니다. 나르시스트는 스트레스를 ‘관리’한다기보다 느끼지 않도록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살아간다. 반면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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