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라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마음의 상처와 신체 반응의 회복시간이 다른 이유

by 사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르시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일탈을 반복할수록 그 나르시즘이 점점 심해졌던 것 같다. 범죄에 해당되는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상대 때문이거나 상황 때문일 뿐,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망상 속에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심하게 다툰 날이면 그는 울고 있는 나를 그대로 두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여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일탈을 즐겼다. 내가 감정을 못참고 전화를 걸면 여자를 옆에 둔 채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그에게 호소하는 말을 비웃듯이 듣다가 외박하는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그 때는 몰랐던 사실을 판도라상자를 열고 나서야 알게 된 순간, 나는 도대체 누구와 함께 살아왔던 것인지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사실들을 모른다고 믿고 있는 그의 오만함은, 내가 이혼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현적 나르시스트였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내 분석으로는 그는 기질적으로 그런 성향을 어느 정도 타고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스스로 일탈의 선택과 도파민에 빠지는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결국 내현적 나르시스트의 삶에 점점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고 인내하던 내가 그의 곁에 오랜 기간 있었기에, 그의 나르시즘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에게만큼은 ‘나르시스트의 밥’이라 불리는 에코이스트처럼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까지 미쳤다. 내 헌신의 끝이 결국 나르시스트의 탄생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향한 자책 속에서 한동안 내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애초에 그의 안에 있던 성향이 일탈을 반복하며 살았기에 더 강화되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녕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는 걸까?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고칠 수 있는 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런 질문들을 끝없이 되뇌이면서 결국 나는 그를 한없이 봐주었던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나의 헛된 희망이 그를 나르시스트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모든 탓을 나에게로 돌리면서.. 내 탓만 하기에는 그가 반복했던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전남편의 양파 같은 속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그를 나르시스트라 부르기엔 아직 착한 구석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치만 믿음이 깨지는 순간은 어김없이 반복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은 내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에 대해 말해주어도, 그때의 나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의 실체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증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실패한 결혼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제3자의 눈에도 그의 본성이 분명히 드러난 뒤에야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던 긴 시간들은 나를 더 깊이 있는 생각 속으로 가뒀었다. 그리고 나는 겉으로는 무심하고 차가워보이지만 속은 여리고 여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이혼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내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그는 서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달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음의 상처와 신체 반응의 회복시간이 다른 이유는 뭘까? 마음의 회복과 몸의 회복은 속도가 다르다. 사람에 따라 큰 스트레스나 배신, 충격을 겪으면 두 시스템이 따로 반응할 수 있다.(※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① 인지(마음, 생각)

사건을 이해하고 이유를 찾고 의미를 정리하는 것은 뇌의 전두엽이 담당하는 기능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상황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가 온다.


② 신체 반응(자율신경)

하지만 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몸은 긴장 상태를 기억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심장 긴장, 호흡 패턴의 변화, 근육 긴장, 위장 반응 같은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자율신경계와 편도체(위험을 감지하는 뇌의 시스템)가 관여한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논리만으로는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머리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느끼더라도, 몸에서는 가슴 통증이나 심장 두근거림, 불안감 같은 반응이 뒤늦게 나타나거나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자율신경실조증은 단순한 스트레스만으로 쉽게 발병하는 질환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장기간의 강한 스트레스, 불안 상태의 지속, 수면 장애, 과도한 긴장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일시적인 감정 변화나 스트레스만으로 바로 발생한다기보다, 신체가 오랜 시간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신경계의 균형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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