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4가지 상태
결혼만 하면 행복할 줄만 알았다. 길었던 연애기간 동안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횟수는 고작 한달에 한번 정도였기에 결혼을 하면 매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뒤늦게 알게된 건 한달에 한번뿐인 만남이었던 이유가 그가 나만 만나는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땐 몰랐었다. 그가 바람은 절대 안된다며 시작한 연애였기에 어리석게도 그를 한없이 믿었었다. 연애 기간 동안 어렸고 철없던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전남편이 나만 사랑한다고 믿었었고,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겠다며 속삭이던 그의 말에 속았다.
결혼하자마자 시작된 그의 매일 늦은 귀가는 알콩달콩한 신혼을 꿈꾸던 나에게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이럴거면 대체 왜 결혼한걸까'라는 생각이 매일 밤 들었었다.
신혼초부터 그는 사회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지인들과 술 마시느라 매일 같이 늦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의 늦은 새벽 귀가는 일상이 되었고 심지어 새벽 5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날들도 빈번했다.
어느날은 노래주점 도우미에게 왜 가버렸냐며 다시 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걸린적이 있었다. 그는 '여자도우미는 다 늙은아줌마'라며 노래만 불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 뿐인데 형들이 연락하라고 시킨거였다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었다. 유흥과는 거리가 먼 너무 순진했던 나는 그의 말을 언제나 믿었다. 콩을 팥이라고 하는 줄도 모른채..
그는 집에 빨리 들어올 수 있는 날에도 차안에서 한시간 정도 핸드폰을 하다가 들어오는게 기본 이었다. 그리고 매번 대화 없이 함께 티비를 보며 식사를 하는게 전부인 신혼이었다.
그래도 가끔 지인들이나 친구들과 놀게 되면 그는 매너 있는 사랑꾼으로 변신을 했다. 그래서 난 연애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 때가 좋았다. 지인들이 올때면 나는 연애 때 사랑꾼이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 시선이 중요한 그와 남들 시선은 신경 안쓰는 나의 차이를 그 땐 몰랐다.
신혼집은 그의 출근을 위해 그의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고, 내 앞으로 대출을 한도까지 빌렸다. 실제로는 월세였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는 전세라고 말해야 했다. 체면을 중시하던 그의 집안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거짓말조차 피하고 싶었지만, 그의 집안의 체면을 위해 결국 내 불편한 진실을 덮어두는 사람이 되어갔다.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서 삼키며, 말하지 못한 마음을 속으로 삭이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건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정작 생활은 나 혼자 꾸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해준 것은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함께 있을 때 밥을 사주는 것이 전부였다.
생활비를 달라는 말을 나는 왜 그때 하지 못했을까. 임신 후 유산 증상으로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대출 이자와 월세, 공과금, 생활비까지 모두 내 월급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는 신혼 초부터 생활비를 준 적도 없으면서, 일 때문에 사채를 썼다며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나에게 대출을 받아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사채 빚을 모두 갚아주었고, 그는 매달 원리금을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끝까지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대출을 해달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게 되풀이했다.
난 그런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결혼을 했고, 그때 내 인생은 그가 전부였기에 나도 모르게 그를 위한 헌신이 그렇게 시작되고 말았다.
그는 항상 일하다 와서 피곤하다며 직장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 했고 나의 일상에 대해서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내 물건을 실수로 버릴 만큼, 관심도 대화도 부족했다. 그는 연애 때부터 진지한 이야기를 싫어했다. 그리고 진지한 대화의 끝은 싸우거나 알맹이가 없는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관심 없어하는 내 일상의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 골라 그를 위해 조잘 거렸었다. 그는 내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는 좋아했고 그의 웃는 모습을 보는게 좋아서였다. 나는 그를 위해 무겁지않고 심각하지 않는 그가 좋아할만한 이야기만 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고 편했지만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내 결혼생활의 현실은 '잡은 물고기에는 밥을 주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나는 집 지키는 개처럼 매일 그를 기다렸고 결국 참다가 싸워서 내가 울면, 그는 울어도 본척 만척 먼저 잠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난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고 내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나는 눈물이 없는 극T 인간이었기에 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고 삶을 끝내고 싶은 고통의 수준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결혼 후 180도 달라져버린 그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 분노가 극에 달해 더는 참지 못해 터지면, 그는 나를 달래기 위해 가끔 마트에 함께 가주거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게 전부였다. 그 당시 나는 겉으론 극T 이었지만 내 남자에 한해서는 극F 였고 그는 내 F 감성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내 분노의 마지노선을 정확히 알았었고 그 때마다 달래주면 그냥 바로 풀어지는 한심한 나였다. 길었던 결혼생활동안 딱 한번 단 둘이 여행을 갔었다. 이게 남들은 몰랐던 그와 보냈던 나의 신혼 생활의 전부였다.
난 왜 이런 결혼생활을 붙잡고 살았을까? 신혼초부터 이토록 힘들었는데 왜 그와 언젠가 행복해 질거라는 환상을 포기하지 못했을까? 지금 돌이켜봐도 나도 모르겠다. 그저 한없이 믿고 바보처럼 순진 했던 시절의 내가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매번 반복되는 힘든 현실과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내 기분의 상태는 오락 가락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결혼생활은 점점 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무너지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갔다.
우리는 매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두 축을 오가며 살아간다. 이 두 신경의 균형에 따라 몸과 마음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내가 겪어온 경험과 여러 자료들을 참고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면 다음의 네 가지 상태로 나눌 수 있다.
(※ 전문의가 아닌 개인적 정리이며, 의학적 진단 기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① 교감 ↑ + 부교감 ↓ : 과각성·스트레스 모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상태다.
몸이 위험에 반응하듯 긴장을 유지해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하며, 과호흡·어지러움이 찾아온다. 소화는 안 되고 속이 쓰리거나 불편하고, 손발은 차갑고 잠도 쉽게 오지 않는다. 편두통이나 목·어깨 뭉침 같은 증상도 동반되기 쉽다.
② 교감 ↑ + 부교감 ↑ : 과부하·난장판 모드
두 신경이 동시에 과하게 켜져 균형을 잃은 상태다. 심장은 두근거리는데 몸은 이상하게 피곤하고, 속은 더부룩한데 설사와 소화불량이 왔다 갔다 한다.
몸은 긴장되어 있는데 정신은 흐릿하고, 두통·멍함·멍때림도 잘 온다.
감정 기복도 커지고, 자율신경실조증이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라고 한다.
③ 교감 ↓ + 부교감 ↑ : 휴식·회복 모드
건강한 이상적 균형 상태다.
호흡은 깊고 안정적이고, 심박은 차분하다.
소화가 잘 되고 손발은 따뜻하며 마음이 포근하고 차분하다. 잠도 편하게 들고 감정도 안정된다. 몸과 마음이 '지금은 안전하다'라고 느낄 때 나타나는 상태다.
④ 교감 ↓ + 부교감 ↓ : 무기력·번아웃 모드
힘이 없고 기운이 빠진 상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졸리지만 깊게 자진 못한다. 혈압이 낮아 어지럽고 한숨이 자주 나오며, 우울감·무기력이 나타나기 쉽다.
교감도 떨어지고 부교감도 떨어져 회복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소진 상태다.
지금의 내 상태는…
나는 이 세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하며 오랜 시간 오락가락했다. 1번(과각성), 2번(과부하), 4번(무기력)을 반복하다가 최근에는 3번(휴식) 같은 순간도 가끔씩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찾아온다.
자율신경실조증이 오기 전에는 ‘3번(휴식)’ 상태가 기본이라, 잠깐씩 찾아오는 힘든 순간도 신경계가 스스로 조절하며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자율신경실조증이 발현되면 모든 것이 뒤바뀐다. 기본 상태가 마치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두근거림이 되어 버리고, 오히려 ‘3번(휴식)’ 상태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마치 네가지 상태가 뒤섞인 복합적인 흐름 속에 있는 것 같다. 나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은 순서를 잃은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