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그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돈과 가까이 있는 사람 같다. 사모펀드를 운용하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상품들과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회사의 대표이다. 돈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하면서 인간적인 글을 쓰는 것이 인상적이다.
글만 읽다가 가까이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가 이룬 성과에 찬사를 보내며 그가 어떤 기준으로 투자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이윤추구가 목적인 일을 하며 어떻게 문학을 놓지 않는지 궁금했다. 돈과 문학은 상충해 만날 수 없고 둘 중 하나만 마음에 둘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왔다. 무엇보다 문학을 위한 시간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와 그의 자리가 멀어 묻지 못했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의 책을 주고받았다. 그는 며칠 후 책을 잘 읽었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건네었는데 그의 반응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책의 판매처를 물었고 이후엔 지인들이 책을 구매한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이 없었으면 인사치레로 생각했을 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이.
감사한 마음에 내 책 보다 두 배정도 두꺼운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투자에 관한 이를테면 자기 계발서 같아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책은 삶과 부를 바라보는 태도를 다루고 있었다. 읽다가 한 부분에 오래 머물렀다. 내용은 ‘관계의 미학’에 관한 챕터였다.
투자계의 거장들은 자금난에 처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의 대표가 가진 ‘눈빛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인재를 발견하는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덧붙혀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연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자와 그 껍질을 적절한 시기에 쪼아주는 관계라고 했다. 두 사람이 빚어내는 정서의 교감과 상호작용의 아름다운 조화와 화음을 소개했다.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후배들에게 기꺼이 내어줄 마음이 있는 어른을 만나 반가웠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삶도 동일한지 궁금하다. 몇 달 후, 이전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내 책에 대한 관심에 깊이 감사했다. 남다른 구체적인 응원이 힘이 되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는 민감한 돈을 다루기 때문에 문학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문학과 산책으로 당신이 세운 원칙을 점검하며 그 가치를 견고히 붙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산책길로 안내하며 자신의 소신을 나누었다. ‘단순하게 살 것’, ‘목표지점에 가기도 전에 감정에 앞서 불쾌해져 분노하지 말것’, ‘돈을 존중하고 소중히 대할 것’. 여전히 펄펄 끓는 미숙한 젊음에게 선명하고 간결한 삶의 지혜가 좋았다. 이 숲 속을 산책하는 시간으로 돈의 가치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더 무게를 두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부단히 읽고 걸으며 자기 수신(修身)을 감행 해 본 자가 가닿는 깊음을 생각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어렵고 조심스러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탈하고 부담없던 대화를 곱씹으며 ‘관계의 미학’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면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내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만남을 생각했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배려로 가장한 욕망, 친절로 포장된 필요가 아닌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관계일테니까.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가 지속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