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모이는 바다

서로를 알아볼 때

by Ms Hannah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한 한 연예인이 자신의 딸들을 생각하며 나눈 말을 들었다. 사십 대 중반인 자신은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딸들의 슬픔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빠 잃은 슬픔을 어린 딸들이 겪어야 함에 눈물짓는 엄마 마음이 전해졌다.


이따금 내가 겪어 본 적 없는 상실을 겪고 있는 그 아이를 떠올릴 때 나도 그런 마음이다. 어린 마음이 내가 알 수도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그 고통이 너무 시리고 아플 것 같아 마음이 다급했다. 지금 당장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같이 경험했다 하더라도 각자의 고통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형편과 사정이 달라 서로에게 귀 기울 일 수 있고, 무책임한 공감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만이 감내해야 하는 고유한 슬픔의 무게를 세어본다.


“어린 시절 아빠의 폭력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이 문장에 다른 어떤 감정도 묻어있지 않은 게 느껴져 그녀의 눈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긴 하지만 그녀는 이제 서른몇 살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날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붙들고 사는지 알기에 나는 그녀의 고통 이후의 삶을 안아주고 싶었다. 어린 소녀였던 그녀를 슬프게 그렸다가 이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자로 내 앞에 앉은 그녀가 고마웠다. 나는 슬픔으로 가득 차 절망에 치닫은 사람이 결국 빛나고야 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슬픔에 지지 않은 한 사람이 가진 맑고 평온한 눈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았다.


획득과 상실의 연속되는 인생에서 우리는 슬픔을 일으키는 주체가 아니라 슬픔이 머무는 장소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슬픔이 잘 머물다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세상에는 무수한 ‘나 혼자’들이 두서없이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외로워한다. 사적인 슬픔은 동일하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머물렀던 고유한 슬픔은 거대한 감정과 기억의 바다로 흘러 모인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며 연대할 기회를 얻는다.


살면서 기쁜 날, 슬픈 날, 보통의 날들을 세어보면 슬픈 날들은 오히려 며칠 안 되었을 텐데 슬픔은 영원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가장 보통의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이 그 아이에게도 젊은 여자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한나의 시간] 슬픔의 무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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