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품은 한사람의 세계
한 사람이 소유한 공간은 주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진 물건의 가치를 떠나 정갈하게 놓인 모양을 보면 그 사람의 단정한 성품이 보인다. 사적인 공간에 초대받는 것은 한 사람을 깊이 알 수 있는 기회이다. 캐나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한국 정서가 짙게 밴 한 공간을 찾았다. 글을 읽고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집 안 어디서든 숲이 보이는 집에 사는 분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창밖에 푸름이 비집고 들어온다. 산들거리는 초록잎이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환대한다.
함께 문인으로 활동하는 선생님의 초대가 있었다. 깔끔한 문장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 기억에 남았는데 선생님 댁에 방문할 수 있어 기대가 되었다. 거대한 서재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는 오래 머물고 싶어졌다. 두 공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선생님의 아호를 딴 집이라 쓰여진 현판이다. 보통 현판과 달리 양각으로 도드러진 글씨를 보며 선생님이 담고 있을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 벽을 가득 채운 장에 색이 바랜 책과 나란히 줄 세운 찻잔이 보인다. 오래된 책과 작은 찻잔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선생님이 어떤분인지 말해준다.
언젠가 들었던 담양의 ‘명옥헌’ 이야기가 떠올랐다. ‘명옥헌’은 옆 계곡에서 비 온 뒤에는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구슬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 학자 오명중이 마흔 하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가 생전에 살던 곳에 정자를 지었다. 오명중의 부친 오희도는 광해군의 광기를 피해 외가가 있는 곳에 ‘세속을 잊고 사는 집’이라는 뜻의 망재(忘齋)라는 작은 서재를 짓고 어지러운 세상을 등진 채 글로 소일거리 하며 지냈다. 그가 별세한 뒤 그의 아들 오명중이 아버지가 평소 자연을 즐기던 기슭의 시냇물가에 연못을 파고 꽃나무를 가꾼 것이다.
‘명옥헌’을 그려보니 선생님의 공간 ‘자명헌’이 겹친다. 손님을 위해 마련된 식사 공간은 테라스다. 테라스 앞으로 거대한 숲이 시작되고 옆으로는 물레방아 도는 연못에 흐르는 물소리가 배경음악이 된다. 연못 안에는 연잎이 떠있고 잉어까지 노닐고 있으니, 여기야 말로 문인의 집이다. 세상을 잊고자 했던 오희도와 다르게 선생님은 이 공간에서 세상과 소통한다.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녀온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서재에 여러 나라의 시계가 나란히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세계 시간으로 살고 있는 선생님의 일상이 보인다. 매일 아침에는 아내와 저녁에는 딸과 차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가족의 전통이 아름답다.
사적인 공간이 중요한 건 ‘내 마음과 서정을 거기에 동화시키면서 갈무리’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포용과 베품의 근간이 되는 사랑으로 살아가되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선생님은 이 공간에서 ‘수도’하는 마음으로 다음 ‘순례’를 준비할 것이다. 선생님과 가족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되, 물건이 집을 덮어버리거나 해체하지 않고 자신의 색을 더해 더욱 온전히 자신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사람의 세계를 알게 되어 기뻤다.
시인 황지우는 낙향해 ‘명옥헌’ 연못가에 붙어 있는 농가 헛간을 개조해서 집필실로 삼았다. 그는 선경 같은 곳에 묻혀서도 시상을 잃지 않았다. 놀랍게도 여기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읊은 <화엄광주>라는 비장한 장시를 썼다. 시인의 ‘명옥헌’ 집필실 남쪽 커다란 창 정면으로 보이는 산 그 넘어가 망월동이다.
책과 차(茶), 숲과 사람을 품고 있는 ‘자명헌’에서 선생님이 쓰실 글과 삶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