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8일, 생일
재첩국을 끓였다. 재첩에 물과 소금만 쏟으면 된다는 엄마의 설명이 무색하게 냉장고에서 꺼낸 재첩을 국그릇에 담아내기까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요리가 손에 익지 않으니 매번 이모양이다.
"오, 시원하다."
"더 줄까?"
따뜻한 음식이니 포근한 도구를 써야겠다며 나무 숟가락을 꺼내길 잘했다. 손톱만 한 조개 알들이 흙바닥 위를 구르는 듯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조갯살이 뿜어낸 뽀얀 국물로 입안을 헹구자 쌉싸름하고 개운한 향이 들어찼다. 가늘게 빛이 새어드는 서늘하고 캄캄한 동굴을 머금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1년 전 이른 아침에 마셨던 재첩국 냄새가 간절하던 참이었다.
부모님은 근 20년간 같은 농담을 나누셨다. 부산에서 명절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마다 외할머니를 뵙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겠구나 하며 허허 웃으셨다. 한 생명의 다함을 주제로 소리 내어 웃는다는 게 섬뜩하지만, 이런 모순을 동력으로 살아내는 것 또한 산 자의 일이다. 박을련 여사는 20년 넘게 병상에 계셨다.
외할머니를 보내던 화장터에서 우리 가족은 재첩국을 먹었다. 손에 쥔 유골함 번호가 전광판에 번뜩이기를 기다리며, 다른 남겨진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문상 오신 손님을 맞느라 밤을 꼬박 지새워 노곤해진 몸을 풀기에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다. 그 후로 가끔 생각나는 그 맛을 다시 만나기 어려웠다. 서울에는 재첩국 하는 집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요리를 하려 해도 재첩 구할 길이 없어 추억 속에만 있었다.
가끔 아빠가 맛없는 음식만 골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밀가루 뭉친 식감이 나는 분홍색 소시지며, 혀에 닿는 미끈한 느낌도 맛도 밋밋하기 그지없는 토란도 그렇고. 맛있는 음식은 어떻게 그리 기가 막히게 싫어하는지. 사각 베어 물 때 나는 소리가 그 이름을 닮은 사과, 햇살을 농축해서 과실에 담은 듯한 달디 단 복숭아. 내 평생 봐온 아빠의 다과상엔 단 한 번도 이 두 과일이 등장한 적이 없다. 아빠가 사과와 복숭아 맛을 알긴 하실까 간혹 궁금하다.
아빠는 음식에서 맛이 아니라 기억이 씹힌다고 했다. 내색도 못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흘겨봤던 세옥이의 도시락 속 분홍 소시지는 51년생 김영감님에게 가장 찬란한 음식이 되었다. 그제야 언제인가 엄마가 해 준 귓속말이 떠오른다. 김영감님의 어머니가 종로의 어느 버스 안에서 공습을 받고 돌아가시던 1970년대 그날, 그의 손에는 4남매와 교회 식구들을 먹이려던 복숭아를 품은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사과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한 걸 보면 아빠는 복숭아보다 사과가 더 아픈지도 모른다.
재첩국을 두 그릇이나 비운 그는 다음날 A4용지 일곱 장에 달하는 편지를 책상 위에 남기고 없었다. “우리가 만난 기간에 모든 계절을 다 거쳤구나."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그가 가진 가장 큰 재주였던 유려한 문장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깨끗이 청소된 방 안엔 함께 덮던 이불이 침대에 누워 숨을 죽이고, 칫솔 꽂이엔 홀로 남은 칫솔이 자리를 지나치게 넓게 쓰고 있었다.
누군가 재첩에 어떤 맛이 씹히냐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으로 딴청을 피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