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조경철 천문대에서, 당신에게
문득 별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가사를 듣다가 별이 보고 싶어 졌는지, 별을 그리다가 노래를 듣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주보다 반짝이는 것이 많은 이 속된 도시에서 별은, 보고 싶다고 당장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기에, 연연하는 마음이 우주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람의 기운과 효과를 믿습니다.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을 찬양하며 덜어냄의 미학을 강조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바람은 욕심과 같은 뜻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바라는 것들 중 겨우 몇 개를 이룰 뿐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소망하는 마음은 살아가는 데 큰 동력과 기쁨을 제공합니다. 별을 바랐더니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요.
별 헤는 노래를 오래 들었더니 정말로 별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강원도 화천의 어느 산골로 향했습니다. 해발 1,010m 광덕산 정상 인근, 우리나라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휴전선까지 20여 km에 불과해 북녘땅이 지척에 보이는 조경철 천문대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해방 후 남쪽으로 홀로 내려온 평안도 출신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는 이 광덕산 자락에서 하늘과 고향을 향해 시선 두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박사도 당신처럼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걸 이룰 내적 자원이 넉넉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재학 중 김일성을 암살하려다 수감(어떻게 살아남은 걸까요.), 월남하여 장교로 임관, 6.25 전쟁에 참전, NASA 우주 과학부의 주임 연구원으로 연구, 경희대학교에 우주과학과를 설치. 한 인간의 몸으로 이 모든 걸 다 경험할 수 있는 걸 보면 굳이 사람의 생을 별의 수명과 비교해야 하나 의구심이 듭니다. 그가 자주 바라보던 하늘이 너무 넓었던 탓일까요. 박사는 연구 외에도 다재다능한 욕심쟁이 었는데 그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찍어낸 듯한 정갈한 필체로 서예를 했으며, 재즈를 즐기고 자동차와 함께 살았습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패러글라이딩을 배우는 정력가였습니다. 시대의 풍조일랑 배짱 있게 제쳐두고 역시 저도 더 바라고 바라야겠습니다.
계획에 없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동안 동행자와 수없이 의심했습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굽이치는 좁은 도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정말 이 길을 따라가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건지 불신할수록 길은 더욱 험해졌습니다. 차내에 서늘한 기운이 스미는 것으로 보아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진 않구나 걱정을 달랠 뿐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건물이 깜깜하고 또 고요했거든요. 입구를 찾지 못해 전화해보고 나서야 옳게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천문대에 다다르는 과정과 도착지점에 이르고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꼴이 꼭 제가 인생을 꾸리는 모습과 닮아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미세먼지가 짙은 날이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도 떠난 걸 보면 별을 보고 싶은 게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별은 밝았습니다. 오래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하얀 쌀밥처럼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늘은 별을 더 많이 꺼내어 보여줬습니다. 별에도 색깔이 있다는 걸 긴 시간 지켜보고 알았습니다. 책에서 그런 사실을 배웠다는 걸 눈으로 보고 나서야 기억이 났습니다. 지식과 아는 것 사이에는 이토록 먼 간극이 있습니다. 달이 크고 밝은 날이라 평소의 10% 정도만 겨우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직원은 일러주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게는 충분했습니다. 100%를 모르기 때문에 괜찮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좋을 수 있습니다.
실은 당신과 무용한 것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초승달이 뜬 맑은 날에 작은 빛 점 하나 들지 않는 이 산을 한 번 더 오르고 싶습니다.